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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Jan 05. 2022

나의 지구가 돌아가는 건 역시,

다 애증 때문인 거 같다.




연말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회사에 꽤 큰 건의 클레임이 터졌다. 내 담당 고객이었고, 요 며칠 나는 휴가를 반납하고 밥먹듯이 야근을 했다.

사실 늘 얘기하지만, 일이 많은 건 백번이고 천 번이고 견딜 수 있는데 역시 늘 나를 무너트리는 건 사람이다. 내가 배운 회사 일이 '내 잘못이 하나도 없는 일로 매번 사과해야 하는 거'라, 나는 내가 만들지 않은 물건의 하자로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았다.


언성을 높이는 이도, 방관하는 이도, 입으로만 돕는 이도, 눈치 없이 징징거리는 이도, 죄다 꼴 보기 싫었던 예민한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키보드가 부서져라 일하고 있는데 누가 옆으로 슥- 다가왔다. 평소 뺀질거리기로 유명한 건넛편 자리 책임님이었다. 별 관심 없이 그냥 모니터만 보고 있는데, 옆에서 뭐라 뭐라 하는 것 같았다.



"네?"
"OO아, 어차피 욕은 책임들이 먹을 거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너 요새 얼굴이 반쪽이야."
"…"



저 사람이 원래 저렇게 다정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막 들려고 하는 동시에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막 솟구쳐 올라와, 허둥지둥 화장실로 달려가서 엉엉 울었다.


사실 모두가 안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내가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는 거라고 얘기했고, 어떤 이는 내가 너무 멘탈이 약하다고 했으며, 또 다른 이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는 내가 덜 열심히 해도 된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더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정말 힘들었던 건, 그 모든 판단의 잡음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내가 가장 필요했던 말은, 너 지금 많이 힘들구나?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너를 걱정하고 있다는 눈빛과 말투에서 오는 온기가 나는 너무 간절했다.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애증의 과장님에게 이렇게 위로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사람 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애증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지구가 돌아가는 건 전부 애증 때문인 거 같다.




노딸랑 (출처: MBC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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