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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Apr 25. 2022

평온함에 대한 집착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단다.




평온함에 대한 집착이 있는 편이다. 나는 한계를 모르는 들뜸도, 바닥을 모르는 가라앉음도, 행여 그렇다 한들 타인에게 그것을 들키는 것에 대한 지나친 강박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상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온몸에 힘을 주며 산다.


최근에 나의 넷플릭스 최애 시리즈 중 하나인 브리저튼 시즌 2가 공개되었다. 대부분 시즌 2가 시즌 1보다 덜 재밌다는 후기가 많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시즌 1을 더 재밌게, 오히려 인상 깊게 보았다. 특히 유난히 엔소니의 엄마가 엔소니의 행복을 기원하며 조언하고 질책하는 장면이 많았다.


일찍 갑작스럽게 남편을 여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낸 그녀는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기까지 무척이나 힘겨워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그녀를 위로하는 것은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다시 그를 선택하고 그를 사랑할 것이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미 모든 상황과 현실이 바닥까지 추락했다고 느끼는 그와 그의 연인 케이트를 위해 이렇게 조언한다.


‘최악의 모습을 보여줘야만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단다.’




출처: Netflix '브리저튼'



내가 조금 시간을 걷다 보니, 우리는 우리의 삶을 늘 중간으로 살 수 없다. 나는 그게 집착이라는 것을 이미 알게 됐다. 그럼에도, 그 짐을 내려놓지 못할 때마다 매번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서 엔소니를 볼 때마다 자꾸만 내 모습이 투영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인지 나는 그의 어머니가 해주는 이야기가 곧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거 같다.  


우리는 늘 바닥을 겪는다. 나는 그런 모습을 감추고, 묻어두기 위해 항상 혼자였다. 최악을 보여주는 게 두려워 누구에게도 최고의 사람이 되지 않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불행한 삶이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손 놓을 수 없었던 긴 시간이 그 말에 조금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말처럼, 앞으로는 스스로 내가 최악이라고 느끼는 순간을 솔직하고 건강하게 표출하는 방법에 대해 좀 연구해보려 한다. 건강하게. 부디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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