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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Oct 12. 2021

아쉬움과 후회

그 간절함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겠지.




예전에는 어딜가건 내가 제일 어렸는 데, 요즘 세상을 둘러보면 나보다 서너 살쯤 어린, 아니 가끔은 그보다도 더 어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을 만난다. 간만에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갔는데, 인턴쯤으로 보이는 친구가 시간마다 쪼르르 달려와서 뭐가 불편하진 않은지, 뭐 필요한 건 없는지, 상냥하다 못해 쉬지 않고 내 비위를 맞춘다. 원래 나는 미용실이건 택시 건 식당이건 죄다 말 한마디 없이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유형의 사람이다. 그것이 하루 종일 사람을 상대하는 이에 대한 나의 배려였다. 그래서 부담스러울 만큼 밝은 웃음과, 과하게 귀여운 말투로 명랑하게 나를 챙기는 게 참 갸륵하고 불편했다.

그런데 여느 직장이 그러하듯 선배 인턴? 쯤으로 보이는 이가 지나가며 그녀를 향해 날 서게 비꼬는 것이 손님인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쉬운 게 하나도 없구나, 여기도 똑같구나, 싶어 무안했을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데 웬걸. 상대를 향해 생글생글 웃으며 ‘감사하다.’고 한다.  


그 시점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연민’, ‘짜증’, ‘곤란’ 다른 무엇도 아닌 ‘반성’이었다.

당사자에겐 별 일 아닐지도, 아니 비꼰 거 자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해였을 지도 모르나, 그녀를 자꾸 보니 계속 예전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누군들 사회생활에 능숙하겠느냐만은, 나는 정말로 사회생활에서 고통스러워했다.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말에 인색했고, 뻣뻣하고 냉담한 사람이었다. 상대방의 반응에 굉장히 공격적으로 대응했고, 그것이 나의 줏대,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그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그녀의 웃음이 밝았다. 부딪히는 모든 것들에 뜨겁게 분노했던 만큼, 나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애정을 쏟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좀 더 빠른 속도로 지쳐갔다. 그래서 그 인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그 부딪힘을 좀 더 미끄덩 지혜롭게 밀어내고, 뜨거운 에너지를 다른 이를 향한 애정과 관심으로 쏟았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되고 아쉽다.

인생이란 늘 그렇듯,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그래도 한 가지 고무적인 건, 이 아쉬움과 후회가 날 좋은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믿음에 있다. 그리고 그 인턴은 분명 멋진 헤어디자이너가 될 거라 확신한다.




출처: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내가 옳은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해도 한 가지만 기억하자. 나도 누군가에게 개새끼일 수 있다."

"그래도 전 아직 어려서 그런지, 항상 옳고 싶어요. 내가 맞았으면 좋겠어요."

"좋네요. 그 간절함이 타미를 좋은 곳으로 데려갈 겁니다."




오늘의 글 맺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중 하나인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명대사로 하고 싶다. 뭐든 좀 더 잘 해내고 싶은 욕심에 조바심이 나지만, 조금 더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 남는 이 모든 후회와 아쉬움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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