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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Apr 05. 2021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등산하기




체력이 정말 약하다. 돌도 씹어먹는 나이라는데, 나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밤새 노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친구들이랑 1박으로 놀러 갈 때도 혼자 의욕 넘쳐서 ‘누구든 잠자기만 해 봐.’라고 선전포고를 해놓고, 혼자 10시부터 꾸벅꾸벅 졸아 욕먹기 부지기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잠귀가 밝고, 잠의 밀도가 낮아서, 7-8시간을 자도 3-4시간 잔 것처럼 골골거렸다. 게다가 피곤이 기분이 되는 성격이라 여행이나 출장에는 더욱 예민했다.

누구처럼 격렬하게 몸을 쓰거나, 머리가 빠개질 듯이 고뇌를 하지 않아도 나는 집 밖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피로가 쌓이는 사람이다. 앉아만 있다 와도 피곤해해서 누군가는 엄살인 줄 알기도 했지만, 나를 잘 아는 가족들과 친구들은 안다. 금요일이 되면 나는 눈 밑에 짙은 쑥떡을 달고 다녔다.



나는 평범하게 일주일 중 주말을 쉰다. 보통 수요일 아침부터 체력적인 한계가 찾아온다. 육체적인 강도로 설명하자면, 내 몸무게가 50킬로 정도인데, 뇌가 5톤, 눈알 한 짝 당 1톤 정도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어나는 게 정말 고통스럽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다 겨우 주말이 되면 하루는 꼼짝없이 침대에 갇힌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않고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어제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 가벼운 예능이나 돌려보고 있는데,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20대에도 자기 맘대로 살지 못하면 평생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출처: MBC '놀면 뭐하니'



그래서 그다음 주말 집에서 제일 가까운 산으로 등산을 다녀왔다. 저질체력인 것도 모자라 최근에 운동도 못해서 5분 만에 숨이 찼다. 날까지 너무 추워서 들숨에 폐가 너무 아팠고, 마스크 안에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혀 뚝뚝 흘렀다. 설상가상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결국 정상을 보지 못하고 중간 휴게소에서 다시 내려왔다. 다리가 퉁퉁 얼었고 무릎이 아팠다. 나는 나에게 가혹한 사람이라 사실 꾸역꾸역 올라갈까 고민도 했으나 (작년에 폭설의 한라산을 독하게 완등 한 후 3개월 동안 고생했던 나였다.), 완등의 성취감에 대한 부담을 버리자고 계속 되뇌었다.



인생을 살며, 짜릿하게 마음에 남는 한마디들이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지독한 우울감에 시달리면서, 나는 나에 대하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그냥 지나가라. 제발 이제 지나가라.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지 못했다.

불과 몇 주 전에 들었다면, 나는 또 얼마나 깊은 자기혐오의 바닷속으로 잠겼을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현재에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나는 여전히 운이 좋았다.



한수희 작가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하려면 나는 건강해야 한다. 지금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않으나, 여전히 남은 20대를 황홀하고 후회 없이 살아내고 싶은 열망이 존재한다. 우울하지 않게 사는 것은 욕심이다. 그래도 우울을 다루는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고 포기할 만큼 스스로를 홀대하지 않겠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나를 치료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오늘은 등산을 해보고, 다음 주에는 서점에 가서 책을 읽을 생각이다. 그리고 날이 좀 풀리면, 주말에 가까운 바닷가도 다녀올 것이다. 쓸데없이 애쓰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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