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인본주의
우리 집에서 5분을 걸어 나가면 코다리찜 가게가 있다. 운동을 가기 위해서는 그 길을 꼭 지나야 하는데, 한 달쯤 전부터 그 길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평소 길고양이들 밥을 곧잘 챙겨주곤 했지만 조금만 다가가도 질색팔색을 하며 도망 다니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이렇게나 길 한가운데 뻔뻔하게(?) 앉아 나를 맹렬히 노려보는 눈빛에 나는 처음으로 겁을 먹었다. ‘혹시 달려들면 어떡하지? 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나는 요 며칠 인도가 아닌 차도로 빙 둘러가곤 했다. 꽤나 불편하고 불쾌했다.
그러다, 오늘 왜 이 녀석이 그동안 이곳에 안방마님처럼 눌러앉게 됐는지 알게 됐다. 밤늦게 집으로 가고 있는데, 장사를 마친 코다리찜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남은 생선을 아이에게 주고 있었다. 아차차,,,
길고양이가 한 곳에 정착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곳에 먹을 게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맹렬한 눈빛은 어쩌면, 내가 느낀 불편함과 불쾌함을 행동으로 드러냈을 몇몇 몰상식한 인간들에 대한 경계였을 것이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매일 입으로는 얄미운 인본주의를 비판하면서, 하루의 끼니를 채우기 위해 그 길 위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 따가운 인간들의 시선을 견디며 코다리찜 유리문만 바라보고 있었을 이 생명체의 몸짓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누군가는 내 인생사는 것도 바쁜데 고양이 입장까지 생각해야 하냐고 물을 수 있다. 물론 내 인생도 치열하고 고단하다. 하지만 나는 내일 먹을 밥이 있고, 나를 보호하는 수많은 법과 제도가 있으며(물론 아닌 것도 있지만), 맞은편에 걸어오는 사람들이 나를 발로 차거나 돌을 던질까 봐 걱정하진 않는다. 그리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여리고 약한 것을 위해 나의 것을 기꺼이 주는 기쁨을 안다.
내일 퇴근길에는 가게에 들러 코다리찜 소자를 하나 주문하고, 사장님 손에 츄르 몇 개와 캔을 쥐어드리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