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박리

나는 예상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다.

by 오르니




2021년 3월 24일 수요일, 집 앞 동물병원에서 보리 눈이 빛에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다. 모두가 애써 아니길 바라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보리를 늘 케어해주시던 의사 선생님은 여기서는 장비가 없어 아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어서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시라 권유했다.



2021년 3월 28일 일요일, 아침에 눈이 일찌감치 떠져서 다시 잠들기 쉽지 않았다. 전날부터 비가 쉬지 않고 왔다. 내내 마음이 습하고 불안했고 가라앉았다. 보리 안과 병원을 예약한 날이었다.

겁 많은 우리 아이는 차를 타고 가는 30분 내내, 병원에 있는 2시간 내내 바들바들 떨었다. 앞이 안보이니 더 무서웠겠지. 잠깐 안약을 넣고 20분 간 대기하는 동안 아기를 안고 병원 주변을 산책했다. 비가 아주 조금씩 내리는 데 비가 온다는 걸 보리에게 알려주고 싶어 우산을 쓰지 않았다. 가슴에 폭 안긴 아기의 귀에 한참 동안 제발 아프지 마, 아프면 안 돼 라고 얼마나 속삭였는지 모른다.



무제.png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97174&cid=58401&categoryId=58401




강아지 망막박리. 국내에 수술할 수 있는 병원도 거의 없고, 수술을 해도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다고 한다. 특히 망막박리는 골든타임이 중요한데, 이미 보리는 박리 정도가 심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유난히 겁이 많고 예민한 아이인 데다가 치료된다는 보장이 없이 다시 수술대에 눕히는 게 겁이 났다. 우리는 수술을 포기했다.



아이의 시력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는 것은 병원에 가기 전부터 이미 짐작하고는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예상하고 계획했던 미래에, 보리가 장애견이 되는 상상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보리가 당연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다가, 노견이 되어 무지개다리를 건널 거라는 거만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든 보리의 얼굴을 백미러로 바라보며, 한참 생각했다. 나는 예상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다.



주말 내내 비가 쉬지 않고 내리다 그쳤다. 다음 주에는 꽃이 활짝 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보리 얼굴이 떠올랐다. 추운 것도 싫어하고 더운 것도 싫어하는 그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인 봄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한산한 평일 낮에 보리를 데리고 텅 빈 놀이터를 쏘다니던 그 풍경이 나한테는 봄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였다. 우리가 참 예뻐하던 보리 사진, 온 동네 흙바닥을 다 들쑤시고 다니다가 벚꽃잎이 콧구멍에 붙어버린 그 사진을 한참 동안 보며, 한없이 사랑스럽고, 사랑스럽고, 그랬다.



IMG_2863.JPG 2018.04.07 동네 놀이터 휘젓던 소년 보리



나는 내내 보리가 올해 벚꽃만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만 참으면 봄이 오는데, 생각했다. 외출하다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너무 좋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아기. 누나가 너의 눈이 되어줄 테니까, 더 이상 아프지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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