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법적인' 어른으로 산 시간이 '법적인' 어른이 아닌 시간으로 산 시간의 절반쯤의 세월이 흘렀다. 손바닥보다 작은 주민등록증 카드 한 장으로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되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오래 젖어있었다. 기꺼이 옳다고 믿는 것들은 무너져 내렸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강요받았다. 인간관계는 어렵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으며, 아무도 믿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며 홀로 붕괴했던 지난한 나의 20대는 상처투성이였다.
‘이건 틀렸잖아요!'라고 소리치던 나에게 '네가 옳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잖아.'라고 대답해주던 수많은 수채화 같은 사람들 속에 지난 몇 년을 더불어 살아가며, 나는 조금씩 나의 세상에 물을 탔다.
이제 그 20대의 끝자락에 서서 '타협'이라는 이름 하에 조금씩 세상을 받아들이고,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으며 살아가는 요즘, 나는 조금 섭섭하고 시원할 따름이다.
‘무력감 없이‘라는 말이 온몸에 스며든다. ’사람과 세상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그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가 어른이 됐다.‘고 착각하곤 한다. 그런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사실이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감히 해석해본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다는 착각을 벗어던지며 우리는 견딜 수 없이 무력해지곤 한다. 나 또한 그랬고, 어른이 되는 게 너무 아프다고 생각했다. 온몸으로 세상을 맞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세상에 많이 무너졌다. 이제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이 인생을 좀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인 거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요즘 아주 조금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