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치고 조금 낭만적이라,

작가가 딱이다.

by 오르니




사람들이 취미가 뭐냐고 물어볼 때, 글쓰기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럼 꼭 다음 질문은 ‘무슨 글?’ 또는 ‘어떤 글?’이다. 그럴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머릿 속에 떠오르는 대로 잡다하게 글을 적는 편이라, 때로는 소설이고, 때로는 에세이이고, 때로는 일기이기도 하고, 시도 쓰고, 극본도 쓴다. 근데 그 말들이 너무 거창해서 차마 입에 담지를 못한다.



작가라는 직업이 주는 뻣뻣함이 있다. 머리는 좀 부스스하고 입에 담배 한개피를 꼬나 물고 동그란 안경을 써야할 거 같다. 지독한 가난 혹은 가정사를 경험하면서, 말투는 약간 철학적이고 눈빛은 세상을 좀 통달해야할 거 같으며, 불타는 사랑을 경험해봤어야 할 거 같은 부담이 있다. 그래서 그 앞에서 나는 늘 초라한 평범성 안에 갇히고 만다. (내 눈에 그 모습이 멋져보여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항상 대답의 끝을 흐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요새는 쑥스러워서 글쓴다는 얘기를 아예 꺼내지 못하곤 한다.



출처: Rooo Lou 작가 일러스트 (http://www.unpluggedbaba.com/?p=8530)



나는 평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나는 글로 적는 표현이 좋다. 말보다 좀 오글거려도 용인된다. 흔히 ‘진지충’, ‘감성충’이라는 단어에 있어 말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에세이보다도 적어 놓은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봐도 내가 정신나간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감추고 살아서 그렇지, 나 사실 미친 게 분명하다.


그리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사실 혼잣말도 자주 하지만, 글은 공식적으로 혼자할 수 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혼자가 좋다. (사주를 봤는데, 나는 늘 혼자 있고 싶어하는 팔자라고 했다.)


또, 남아있어서 좋다. 24시간 녹취를 하지 않는 이상, 말은 흘러가지만 글은 남는다. 특히나 나는 머리가 나빠서, 뭐든 잘 까먹고 잊는데, 가끔 그 날의 나는 어땠나 궁금할 때가 있다. 글은 시간이 지나도 제자리에 머무르니,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다. 과거의 쓴 글을 읽으면 그 날의 나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진부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https://m.hanbit.co.kr/channel/category/category_view.html?cms_code=CMS2187921383&cate_cd=003




심지어 수정도 된다. 나는 잔고민, 잔걱정이 많은 편이라 말실수를 할까봐 늘 조심스러워하는데, 글은 실수를 하면 지우면 된다.


공대를 나왔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 대학 친구들은 대부분 현실주의자들이 많아서 그 가운데서 내가 지나치게 이질적이게 느껴질 때가 많다. (MBTI 테스트를 하면 학교 친구 열 중 아홉은 T와F 중 T가 나온다. 나는 ) 그래도 가끔은 소설책을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다니는 내 모습이 가끔 특별하게 느껴진다. 허세여도... 어쩔 수 없다. (공대생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있는 건 절대 아니다. 나의 인맥이 항상 좁았을 뿐...)



언젠가 내가 책을 낸다면, 그 책에 가득 담긴 내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면서, 나를 설명하는 수고로움이 덜해질 거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이걸 좋아하고, 이걸 싫어해요.’ 라고 명료하게 나를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렵다. 이랬다, 저랬다 하기도 하지만, 사실 나도 날 잘 모르겠다. 그냥 ‘오늘의 나’의 호, 불호, 감정, 생각을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책이 나오면, 수많은 ‘오늘의 나’가 쌓여있을 테니, 그게 곧 ‘나’이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다.




적다 보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100가지도 넘게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다.

이렇든 저렇든 쑥스럽긴 해도, 나는 공대생치고 조금 낭만적인 편이라, 작가가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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