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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Apr 17. 2021

공대생 치고 조금 낭만적이라,

작가가 딱이다.




사람들이 취미가 뭐냐고 물어볼 때, 글쓰기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럼 꼭 다음 질문은 ‘무슨 글?’ 또는 ‘어떤 글?’이다. 그럴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머릿 속에 떠오르는 대로 잡다하게 글을 적는 편이라, 때로는 소설이고, 때로는 에세이이고, 때로는 일기이기도 하고, 시도 쓰고, 극본도 쓴다. 근데 그 말들이 너무 거창해서 차마 입에 담지를 못한다.



작가라는 직업이 주는 뻣뻣함이 있다. 머리는 좀 부스스하고 입에 담배 한개피를 꼬나 물고 동그란 안경을 써야할 거 같다. 지독한 가난 혹은 가정사를 경험하면서, 말투는 약간 철학적이고 눈빛은 세상을 좀 통달해야할 거 같으며, 불타는 사랑을 경험해봤어야 할 거 같은 부담이 있다. 그래서 그 앞에서 나는 늘 초라한 평범성 안에 갇히고 만다. (내 눈에 그 모습이 멋져보여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항상 대답의 끝을 흐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요새는 쑥스러워서 글쓴다는 얘기를 아예 꺼내지 못하곤 한다.



출처: Rooo Lou 작가 일러스트 (http://www.unpluggedbaba.com/?p=8530)



나는 평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나는 글로 적는 표현이 좋다. 말보다 좀 오글거려도 용인된다. 흔히 ‘진지충’, ‘감성충’이라는 단어에 있어 말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에세이보다도 적어 놓은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봐도 내가 정신나간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감추고 살아서 그렇지, 나 사실 미친 게 분명하다.


그리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사실 혼잣말도 자주 하지만, 글은 공식적으로 혼자할 수 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혼자가 좋다. (사주를 봤는데, 나는 늘 혼자 있고 싶어하는 팔자라고 했다.)


또, 남아있어서 좋다. 24시간 녹취를 하지 않는 이상, 말은 흘러가지만 글은 남는다. 특히나 나는 머리가 나빠서, 뭐든 잘 까먹고 잊는데, 가끔 그 날의 나는 어땠나 궁금할 때가 있다. 글은 시간이 지나도 제자리에 머무르니,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다. 과거의 쓴 글을 읽으면 그 날의 나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진부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https://m.hanbit.co.kr/channel/category/category_view.html?cms_code=CMS2187921383&cate_cd=003




심지어 수정도 된다. 나는 잔고민, 잔걱정이 많은 편이라 말실수를 할까봐 늘 조심스러워하는데, 글은 실수를 하면 지우면 된다.


공대를 나왔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학 친구들은 대부분 현실주의자들이 많아서  가운데서 내가 지나치게 이질적이게 느껴질 때가 많다. (MBTI 테스트를 하면 학교 친구   아홉은 TF  T 나온다. 나는 ) 그래도 가끔은 소설책을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다니는  모습이 가끔 특별하게 느껴진다. 허세여도... 어쩔  없다. (공대생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있는  절대 아니다. 나의 인맥이 항상 좁았을 ...)



언젠가 내가 책을 낸다면, 그 책에 가득 담긴 내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면서, 나를 설명하는 수고로움이 덜해질 거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이걸 좋아하고, 이걸 싫어해요.’ 라고 명료하게 나를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렵다. 이랬다, 저랬다 하기도 하지만, 사실 나도 날 잘 모르겠다. 그냥 ‘오늘의 나’의 호, 불호, 감정, 생각을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책이 나오면, 수많은 ‘오늘의 나’가 쌓여있을 테니, 그게 곧 ‘나’이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다.




적다 보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100가지도 넘게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다.

 

이렇든 저렇든 쑥스럽긴 해도, 나는 공대생치고 조금 낭만적인 편이라, 작가가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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