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고 하기엔 아직은 거창하지만,
주말에 시간이 되거나, 여행을 가면 꼭 그 지역의 독립서점을 간다. 그리고 늘 한 권 이상은 산다. 당장 읽지 못해도, 일단 사놓고 몇 달을 쟁여두다 읽곤 한다. 오늘도 작은 독립 서점에 들러 산문집 한 권과 인터뷰집을 하나 샀다.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정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읽힐 것이다. 누군가 그게 취미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실은 취미라기보다는 동기부여에 가깝다. 정지해있는 내 인생에 독려 같은 것이다.
글을 쓰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막상 노트북 앞에 워드를 틀어놓고 앉아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구를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놓기는 하지만, 그 말을 길고 장황하게 풀어내는 것은 상상력이 8할이다. 그리고 모두 공감하겠지만,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어갈수록, 사회생활을 많이 할수록, 머릿속에는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공백이 사라진다. 생각해보면 나는 중고등학교 때에는 글을 써도 써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한 편의 완결을 제대로 낸 적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고로, 현재 나는 펜대를 잡으면 할 말이 없어지는 사회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요새 독립서점을 가서 책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감회가 새롭다. 몇 년 사이에 독립 서점, 독립 출판과 같은 이름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더욱이 놀라운 것은 젊은 작가들이 정말 많아졌다. 90년대생 작가들이 정말 많아졌다.
책에는 왠지 인생의 대단한 교훈 또는 감동을 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내 글이 일기장에만 머물러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도통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게 맞다고 써도, 뒤돌아서면 아닌 거 같고, 힘든 상황을 극복 해내가는 방법은커녕 왜 힘든 지도 실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장황하게 글을 쓰고 나면, 왜인지 나 혼자 징징거리는 것만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우울함을 나눠주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나로서는, 당연히 글을 감춰놓을 수밖에.
그런데 요즘 책을 읽다 보면, 소위 ‘꼴리는 대로’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혹은 징징거리기만 하는 글도 많아졌다. ‘내가 이렇게 우울해! 지금 이렇게나 괴로워!’라는 걸로 300페이지를 채우는 글을 읽고 나면, 교훈이나 감동은 없는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약간 생긴다. 아니 꼭 인생에 기승전결이 들어맞아야 하나, 모두가 공자님이고 예수님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불행 배틀을 할 생각은 없지만, 어쩌면 나의 고단함도 지구별 어딘가 사는 누군가에게는 위로나 공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용기도 조금 생긴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단락 글을 쓰며 오늘을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