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르니 Apr 01. 2021

나는 망가졌다.

사람이 왜 이렇게 어두워... 혹시 직장 같은 거 다녀?




이십 대 초반에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3년 정도 회사를 다니는 동안 지독하게 망가졌다. 우울이 참 무서운 게, 누군가 쇠망치로 머리를 빡 내려친 것처럼 오는 게 아니라, 젖은 수건의 물감처럼 스며든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우울에 완전히 잠식되어버렸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조금만 더 우울하면 죽어버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발라드 노래 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정신병원을 알아봐야 했다.



출처: http://kormedi.com/1225296/우울증이라고-다-같은-우울증인가요/



그동안 나는 내가 우울함에 면역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주기가 있어서 우울한 날이 좀 지나가면 또 지낼 만 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몇 달 동안 마음이 끝이 없는 동굴 속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갔다. 처음에는 생리 전주니까 호르몬 때문이겠지,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X 같은 상사 때문이겠지, 다들 이렇게 살겠지.

그런데, 이제는 다른 핑계를 대기 무색할 정도로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해졌다. 그리고 그런 내가 싫어 더 우울해졌다.



사실 아직 완전히 좋아졌다고 보긴 어려워서 자기 성찰의 관점에서 글을 쓰기가 어렵지만, 분명한 건 한 달 전보다는 숨 쉴 만하다. (좋아진 건지, 폭풍의 눈인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지독하게 싫었다.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너무 징그럽고 흉해 보였다. 점점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고,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은 혼자 있어야 남들에게 피해를 안 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그러면 그런 내가 더 싫어진다. 그렇게 끝나지 않는 자기혐오의 쳇바퀴를 돌고 또 돈다.



점점 나는 가두는 날들의 연속이던 어느 날, 침대에 누워서 사진첩을 보다가, 3년 전 사진을 보게 됐다. 그런데 그 사진 속 나를 보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너무 맑고 예쁘고 밝게 웃고 있는 사진들이 연달아 나왔다. 그때 나 되게 즐거웠는데, 하는 생각과 동시에 3년 만에 내가 완전히 망가져버렸구나 싶었다.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을까, 나 아직 이십 대인데. 내가 너무 불쌍해졌다.



하루라도 빨리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때의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완전히 바닥나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당장 그 날부터 휴가를 쓰고, 본가로 올라갔다. 연휴 내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잤다. 누구라도 회사 이야기를 하면 당분간 회사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집에서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었다. 생전 않던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계속 귤만 까먹었다. 출출하면 라면 끓여 먹고, 잠깐 집 청소도 했다가, 그림도 그렸다. 어린애처럼 엄마한테 안겨있기도 했고, 남동생과 베개싸움도 했고, 눈 오는 날 강아지랑 눈밭에서 뛰어놀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씩 씻었고, 제모도 하지 않고 눈썹 정리도 하지 않았다. (2주간 우리 가족들은 모두 나를 원시인 취급했다. 엄마는 나에게 제발 씻으라고, 만원을 주셨다.) 그렇게 정말 뇌가 텅텅 빈 2주를 지내고 난 게 바로 지금이다. 몸무게가 3kg 정도 불어난 거 같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출근을 했고, 팀원들과 형식적인 새해인사를 주고받으며 그럭저럭 별 탈 없이 퇴근했다. 퇴근길에는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가벼운 저녁을 해 먹었고, 오랜만에 글도 적고 있다.




출처: https://www.adventhealth.com/blog/rest-vs-sleep-know-difference-whole-health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우울 때문에 걱정도 되고, 지금 내가 괜찮은 게 맞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오늘을 평탄히 살아냈음에 감사하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일찍 자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치유의 과정이길 바라며. 내일도 파이팅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을 남기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