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건강한 게 맞아?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새 부쩍 사람 곁에 있으려고 했다. 특히 가족 곁에 있으려고 노력했다. 꽤 긴 시간을 가족과 보내며 지치고 짜증 나고 화가 나는 순간들도 꽤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좋았고 즐거웠다. 그 안정감을 발판 삼아 다시 열심히 살아보려는 데,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해다. 외롭다. 부쩍 외롭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닌데, 당장 이번 주말에 아무 약속도 없는데 뭘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게 내가 그동안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가장 큰 이유이다.
나는 타고나기를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한 사주라고, 사주 보는 언니가 얘기해준 적이 있다. 그래서 연애에도 별 흥미를 못 느끼고 결혼에도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나는 원래 이렇게 타고난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요새는 부쩍 혼자 있는 것이 조금 겁난다. 나에게 외로움은 곧 무기력인가 보다.
사실 계속 스스로 자꾸 건강하다고 되뇌는데, 정말 건강한 걸까? 의심이 자꾸 생긴다. 물론 최악의 순간보다는 한결 살만 해졌다. 지금은 종종 즐겁기도 하고, 낙엽만 굴러가도 웃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자꾸만 나 자신을 세뇌시키는 거 같은 느낌도 든다. 그게 좋은 방향인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에 집에서 엄마랑 언니가 방 정리를 하다가 내 어릴 적 일기장을 발견했다. 신기해서 읽어봤는데 그 안이 온통 욕이었다고 한다. 선생님 욕, 친구 욕, 그리고 엄마 욕까지 어린아이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거친 욕들이 잔뜩 쓰여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며 언니가 깔깔깔 웃는데, 나는 듣는 내내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어릴 적 나는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크게 일탈을 하며 자란 아이가 아니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엄한 엄마를 정말 무서워했으며, 반장도 여러 번 했다.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고, 선생님의 예쁨을 많이 받았다. 물론 질투심도 심했고, 친구랑 싸우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내 안에 무슨 화가 그렇게 많았는지, 일기장 한 대목을 읽었는 데에도, 온갖 욕, 피해의식 그리고 부정적인 태도가 가득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부터 쭉 건강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나는 쭉 병들어있었던 건 아닐까, 사실은 한순간도 나는 괜찮았던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일기가 하나도 즐겁지 않다. 지금은 아무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 10살, 11살의 나는 너무 아팠다.
애써 나는 건강하다고 세뇌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애초에 나는 건강한 적이 있었을까.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오늘은 너무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