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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May 07. 2021

털어놓음

나의 본심에는 늘 정답이 없다.




털어놓는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 계속 진실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잘 털어놓지 못한다. 특히 가장 아픈 순간에는 그 수류탄을 꼭 혼자 안고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어떤 집단에 가건, 나를 유독 싫어하는 사람들이 꼭 한 명씩은 있었다. 그 미움은 내가 피할 수가 없는 것들이어서 늘 정통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자라면서, 세상에 사랑만 받고 살 수 없으니, 그 미움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이제는 조용히 자리를 피하는 법을 터득했다. 날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리려 구태여 애쓰지 않고, 멀어지는 법을 택하는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회피’는 내가 살아가는 수단이 되었고, 나를 지키는 방어기제가 되었다. 그러나 복병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직’이었다.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의 미움은 다른 미움과 포지션이 달랐다. 피할 수가 없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불이익이 생기고 만다.  




회사생활 나만 힘든가.... (출처: tvN 미생)




직장 상사 중에 나를 유난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있다. (현재 진행형이다.) 그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내 입에 담는 것도 유치해서 도저히 열거하고 싶지 않지만, 정리해보면 ‘살랑살랑 그의 비위를 맞추는 '여'사원이 아닌 것’과 ‘그냥 얄미운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여사원들에게 시시콜콜한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을 일삼았고, 굳이 나를 제외한 단톡방을 만들어 은근히 왕따를 시켰으며, 내가 이룬 성과와 인정은 죄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라며 폄하하기 바빴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보낸 메일과 문자를 모조리 읽씹 했고,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데에도 투명인간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그는 그보다 높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천연덕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거나 농담을 하기도 했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그가 나보다 20살이나 많은 어른이라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숨을 쉬는 것도 싫게 느껴졌고, 아침에 눈뜨는 게 지옥 같았다. 그의 웃음소리만 들어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거 같았고, 어느 날은 화장실에 달려가 한참이나 심호흡을 한 후에야 마음을 진정시키고 사무실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 상태가 지금도 몇 달째 지속되고 있다. 사실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그의 냉대 혹은 무시에 조금씩 면역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은 ‘배 째라.’라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답답하면 지가 와서 말 걸겠지, 하고.


내가 좀 더 현명한 성인이었다면 이 문제를 더 지혜롭게 풀어나갔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저 억울함에 몸서리만 칠 뿐 도저히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아 홀로 속병이 도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넌지시 털어놓게 되었다. 마음을 입으로 꺼내는 데 몹시 서툰 사람임에도, 어쩌면 나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 상사가 나를 싫어하는 거 같고,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워 조금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속내를 살짝 내비쳤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니가 그 사람한테 개겼어?’였다.




출처: 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68183




그동안 나는 왜 이렇게 털어놓는 게 어려울까, 사람들은 후련하다는 데 왜 나는 찝찝할까 항상 의아했는데 이제는 조금 윤곽이 잡혔다. 나의 ‘털어놓음’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었고, 매번 곡해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해석은 반드시 듣는 이의 몫이어야 하나, 내 의도와 방향이 눈 앞에서 왜곡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늘 몹시 아팠다.



어쩌면 나의 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오늘도 털어놓은 것을 후회했다.

담아두면 답답하고 털어놓으면 찜찜하다. 나의 본심에는 늘 정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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