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멋지게 버티고, 서글프게 극복하는지.
한때 나는 우주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어야 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자신의 속을 뒤집어 불행을 내보이면, 나는 몹시도 공격적이어졌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어? 그 정도로 징징거리지 마. 나도 참고 있으니까,라고 상대방의 고통을 폄하하던 때가 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내 친구가 내게 아주 걱정스러운 투로 이야기했다.
네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닌데, 너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부터 아무도 너한테 아무 얘기도 못해,라고
그 일은 내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걱정하고 위로해줄 준비가 안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내 불행을 먼저 돌보지 않으면, 나는 그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었다. 그렇게 5년이 넘게 흘렀다.
어제 우연히 가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사연과 고통의 경중을 따지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지만, 어렸던 그녀가 어떻게 그 무거운 시간을 겪어 나왔나,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대체 얼마나 아팠을까. 대체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는 내내 서로 공감했고, 위로했고, 보듬었고, 울고, 웃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들로 수많은 어린 개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는지,
나는 나를 포함하여 종종 마주친다.
몹시도 슬프고 괴로웠으나, 그만큼 얼마나 멋지게 버티고 서글프게 극복하는지,
나는 그것을 보여주는 인간이고 싶었다.
내 앞에 앉은 이의 슬픈 고백에 나의 주말이 온통 회색빛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불행을 근사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이고 싶어진 것만으로도, 5년 만에 나는 꽤 어른이 된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