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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Aug 30. 2021

끝이 있는 삶

마감기한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가.




난 언제 행복했을까, 너그러운 마음은 어디서부터 나올까, 배려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생각해보면 나는 분명한 ‘끝’에서부터 온다.


이 시간의 끝, 이 사람의 끝, 이 고통의 끝에서 나는 기꺼이 모든 아쉬움을 털어낸다.

그리고 반대로 나의 불행은 ‘끝나지 않음’에서 온다.

이 시간의 끝, 이 사람의 끝, 이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득함에서 나는 길을 잃는다.  


학교에 있었던 시간이 가장 즐거웠던 이유, 쳇바퀴 같은 직장 생활이 불행한 이유도 다 같은 맥락에서 온다. 우리는 여행을 그리워하고, 주말을 기다리고, 영화의 엔딩을 아쉬워한다. 지긋지긋한 오래된 집도, 이사 날짜가 잡히면 애틋해지고, 한 달짜리 프로젝트는 며칠 동안 밤낮으로 일하며 열정을 쏟아붓는다. 모두 몇 년, 몇 월, 몇 시, 몇 분에 끝나는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 교복을 벗는 날과 학사모를 쓰는 시간을 특히 아쉬워했다. 그래서 그 마지막 날이 오기 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그 시기에 만난 사람들을 참 귀하게 대했고, 모든 시간에 성실하게 임했다.




출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반대로 3년 넘게 이어진 직장 생활의 알고리즘에서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 시간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되는 ‘마감기한’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에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못하고, 임하는 시간에서 모든 흥미를 상실한 게 아닐까. 어쩌면 나의 가족, 남자 친구, 친구들에게 모질게 밖에 굴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출처: https://ied.eu/project-updates/excellent-techniques-that-will-help/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것들로부터 나는 늘 불행해했고, 언제 끝날 지 정해진 것들에서 나는 나를 온전히 소모했다. 내 인생에 수많은 마감 기한을 만드는 것이 내 인생의 행복 회로의 시작인가 싶다.

그래서 이 무더운 여름도 곧 지나갈 테니, 등줄기의 흐르는 땀도 너그러이 즐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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