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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Sep 12. 2021

여름에 누가 꼬막을 먹니? 저요.

한 여름밤의 식중독





어릴 때부터 소화기관이 건강하지 못해 일 년에 몇 번씩은 밤새 구토와 설사에 시달리는 편이었다. 취업 준비 시즌을 마지막으로 최근까지는 큰 병치레 없이 나름 건강 잘 챙기며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어젯밤 2시간 정도 3년 치를 몰아서 아팠다.


'내가 정말 독립을 했구나.'라고 느끼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제철음식이 뭔지 알 수 없을 때이다. 때 되면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과 과일을 보고 제철음식을 알았기에, 여름에 해산물을 조심해야 한다는 상식에 나는 아주 무지했다. 단골집에서 아주 별생각 없이 꼬막비빔밥을 시켜먹고 나는 식중독에 걸렸다. 저녁을 먹은 뒤 속이 아프고 머리가 깨질 거 같더니,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모든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gonezzu/222479365779





구토를 하다 하다, 마신 물과 위액에 섞여 나올 때까지도 내 위는 수축을 멈추지 않았다. 식도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코와 입으로 미친 듯이 위액이 쏟아져 나왔다.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몸을 못 가누고 이리저리 체액을 쏟아내다 이러다 정말 죽는 게 아닐까, 나 이렇게 추하게 죽고 싶진 않은데, 싶어 화장실 앞에 앉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구급차라도 불러야 하나 했던 새벽 한 시 반쯤? 명치 언저리가 욱신거리는 통증과 탈수 증세를 제외하고는 폭풍이 좀 지나갔음을 느꼈다. 그러고 나니 어휴, 좀 서글프다.


자발적 고립은 자유와 함께 서러움을 짊어진다. 대부분 버틸 만 한데, 물리적으로 몸이 아픈 어느 날엔 정신이 무너져버린다. 이튿날, 종일 술에 취한 사람처럼 뇌에 안개가 꼈다. 그런 날은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꼭 안아줬으면 좋겠다.




당분간 내 인생에서 벌교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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