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슴도치, 망치
보리를 키우기 전, 우리 집을 가장 먼저 다녀간 반려동물은 고슴도치 ‘망치’였다. 망치는 내가 중학생 때 우리 집에 찾아와 5년을 살고 내가 고등학생 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는 어릴 때 꿈이 잠시 사육사였을 만큼 동물을 좋아했다. 유치원 때부터 내 소원을 적는 숙제에는 ‘강아지 키우기’를 적어 냈고, 5학년 땐가, 학교 사물함 위에서 친구들과 햄스터를 키우다 선생님께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네 발 달린 친구들"을 질색하는 엄마와 언니 때문에 우리 집엔 사람 외에는 열대어 몇 마리만 잠시 살다 갔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무슨 결심이 섰던 건지, 우리 집에는 아기 고슴도치가 한 마리 입주했다. 내 작은 손바닥에 가득 찼던 그 아이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만 자고, 사람 손에서는 가시를 바짝 세우고 경계하곤 했지만, 그럼에도 14살 나의 온 기쁨이었다. 엄마는 그 아이에게 ‘망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망치가 입주한 뒤에도 여전히 엄마와 언니는 동물을 무서워했고, 집에서 유일하게 망치를 만질 수 있었던 사람은 나와 아빠뿐이었다. 나는 그 조그만 아이를 세숫대야에 담가 목욕도 시키고, 징그러운 애벌레(밀웜)도 챙겨 먹여 가며 애지중지 키웠다.
그러다 내가 17살 때부터는 학업을 위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고, 집에는 주말 하루 이틀 정도만 갈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를 하며 일주일에 채 몇 시간을 만나지 못하는 망치는 점점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조금씩 엄마와 언니는 망치를 케어하는 것을 버거워하기 시작했고, 아빠가 장기 출장이라도 다녀오는 날엔, 망치는 오랫동안 사람 손을 타지 못했다. 그렇게 망치는 조금씩 병들기 시작했다.
갈아주지 못한 톱밥에서 악취가 나고, 망치가 점점 꼬질꼬질해지던, 어느 똑같은 주말이었다. 다시 기숙사로 복귀를 하기 위해 짐을 싸고 있는데, 울타리 안 망치가 움직이지 않았다. 망치는 온몸을 웅크리고 자서 들숨 날숨을 할 때마다 풍선처럼 부풀었다 꺼졌다를 반복하는데, 멀리서 봐도 망치는 숨을 쉬고 있는 거 같지 않았다. 손가락, 발가락 끝부터 뻣뻣하게 굳으며 무서운 상상이 머릿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망치가 내 손 위로 올라온 게 언제였더라.
나는 그대로 도망쳤다. 기숙사로 돌아가 애써 내가 본 광경을 잊으려 애썼다. 아닐 거야, 내가 잘못 본 거일 거야, 한참을 곱씹던 그날 밤, 엄마에게서 망치를 잘 보내줬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래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망치만 떠올리면 눈물이 펑펑 난다. 망치는 내 마음속에 돌덩이 같은 죄책감을 남기고 떠났다. 다른 무엇보다도, 마지막 순간 망치를 거둬주지 못하고 도망간 내가 여전히 경멸스럽다. 그래서 보리가 아프기 시작한 때부터 불현듯 망치가 자꾸 생각난다. 그리고 망치가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만 같다. 보리도 나처럼 보낼 거냐고.
어쩌면 망치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못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보리가 떠나는 그날까지 나는 한 점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리고 보리가 무지개다리 건너는 날까지 꼭 곁에 있겠다고 망치에게 다짐했다.
보리가 잘 자고, 잘 먹고, 잘 씻고, 잘 노는 것을 오래오래 봤으면 좋겠다. 보리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고, 내가 따라가게 될 날이 온다면, 그때 나는 꼭 구름 위에서 보리와 망치를 함께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