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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Oct 16. 2021

나에겐 수능보다, 취업보다 어려운

엄마 마음




우리 엄마는 옛날 사람이다. 희생과 견딤이 습관이 된 사람. 그래서 엄마는 꼭 앓는다. 그리고 앓는 엄마를 지켜보는 이 어리석은 딸들은 그 무력감을 참기가 너무 어렵다.


내 잔존하는 기억 안에 엄마가 병원에 가는 기억이 거의 없다. 엄마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 근데 너무 잦게 아팠다. 어느 날은 배가 아프고, 어느 날은 머리가 아프고, 어느 날은 머리가 깨졌다. 어린 우리는 그런 엄마를 보며 많이 불안해했다. 상상력이 넘쳤던 어린 나의 그림에는 가끔 엄마의 죽음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런 엄마 손을 잡고 무작정 병원으로 가기엔, 건강검진 비용은 너무 비쌌다.

최근 회사 복지로 엄마 건강검진 지원을 신청하려다 엄마와 싸움이 났다. 고운 말, 미운 말을 다 쏟아내도 엄마는 귀와 입을 닫았다. 입버릇처럼 하던 ‘아프면 그냥 죽겠다.’라는 말에 언행일치라도 시키듯 엄마는 검진 예약을 억지로라도 하겠다는 나의 전화를 끊어버렸고, 입을 막아버렸다. 아직은 검진을 받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국가 검진받고 있다, 신경 쓰지 말아라, 그만하라는 말로 고집스럽게 거절했다. 내가 헛기침이라도 하면, 손가락이라도 베면, 유난스럽게 병원을 가라고 독촉하던 엄마가 답답했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무슨 약을 먹고 있나? 별의별 생각이 내 뇌를 잡아먹었다.



출처: https://notefolio.net/hyeming/74380





그러다 며칠 전 엄마 건강에 적신호가 떴다.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소식에 나와 언니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부랴부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약 먹으면 된다며 엄마는 다시 전화를 끊어버렸다. 미운 마음이 올라왔다. 이럴 거면 왜 자꾸 아프다고 하는 건지, 내가 뭐 얼마나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거라고 이렇게 까지 버티는 건지, 이게 이렇게까지 씨름을 해야 한 일인지, 그리고 엄마는 도대체 얼마나 나를 바보 같은 딸로 만들려는 건지. 나는 너무 답답했고, 괴로웠다.



엄마에게 저녁 늦게 전화가 왔다. 내일 병원에 가볼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잠이나 얼른 자란다. 그 꼿꼿한 엄마의 얼마나 큰 용기인지 알기에, 나는 더 이상 검진 얘기를 하지 않고, 내일 병원 다녀와서 꼭 전화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나와, 그리고 그런 나를 너무 사랑하는 엄마의, 2달이 넘게 이어지던 지독한 싸움은 이렇게 잠시 휴전을 맞았다. 딸들은 엄마가 될 때까지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엄마가 어렵고, 어렵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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