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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Dec 20. 2021

나는 조금씩 핑계 대지 않는 어른이 되려고 해.

우리의 서른 즈음에





며칠 전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의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아빠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엄마로부터는 많은 정서적 학대를 경험했다. 사랑만 받고 자란 삶이 얼마나 되겠느냐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와 나는 제법 잘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버텨낸 우리 자신이 꽤 자랑스럽지만, 우리 삶에는 여전히 생채기가 가득하다.


대화 중에 언니가 ‘아빠가 우리에게 그러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된 건 엄마 때문이야.’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언니와 내가 함께 겪고 있는 수많은 강박과 죄책감, 트라우마는 분명 과거에 기인한 것이 맞다. 우리가 그런 일을 겪지 않았고, 그런 말을 듣지 않았고, 그런 취급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겠지, 지금보다 덜 불행했겠지, 하는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우리가 그 핑계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출처: https://ppss.kr/archives/149604




‘핑계’라는 표현은 다소 가혹하다. 하지만 우리는 불행했던 만큼, 부모로부터, 친구로부터, 사회로부터 사랑받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지독한 트라우마를 이겨낼 분명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불어, 그런 트라우마를 가진 언니일지라도 나는 언니를 많이 사랑할 것이고, 언니 또한 내가 아무리 망가지더라도 무한히 사랑해줄 것이라는 걸 믿는다.  


나는 언니에게 ‘언니, 우리 엄마 아빠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다는 핑계에 평생 우리를 가두지는 말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 이제 조금씩 어른이 되자고 이야기했다. 언니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밥을 먹었고, 나는 그런 언니가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건방진 훈계질이 아닌 언니에게 보내는 나의 무한한 응원임을, 언니가 꼭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서른 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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