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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화 Feb 09. 2017

아직 네가 치킨을 사랑하는 줄 알고

내 직업은 취준생 #.01 친구의 배신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그 외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중에서 


그때는 중국집 냄새를 맡으면 이상하게 치킨이 당기곤 했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서울대 도서관에 피신해 취업 준비를 할 무렵의 일이다. 볕 좋은 날이면 학생들은 학생식당 앞 테이블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탕수육 세트를 시켜 먹곤 했다. 춘장과 얼큰한 고추기름, 달큰한 파인애플 소스가 콧속으로 스며들면, 방금 학식에서 밥을 먹고 나왔는데도 허기가 졌다. 내 뱃고래가 커서가 아니다. 그 느끼한 맛을 함께 나눌 친구들이 고파서다. 


내게도 하늘과 바람, 초록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친구들과 MSG 팍팍 들어간 배달음식을 먹던 때가 있었다. 그 즐거운 나날들은 졸업과 함께 무심하게 흩어졌다. 나는 홀로 화석처럼 타 학교 캠퍼스에 남아, 익숙한 냄새만으로도 그리운 순간을 소환해냈다. 그러곤 평소에 먹지도 않는 자판기커피를 뽑아 담뱃불을 붙였다. 쓰고 달고 숨 막히는 텁텁함으로 입 안을 헹궈내면, 어느덧 냄새가 불러일으킨 향수가 저 멀리 물러났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다잡아 도서관으로 밀어 넣어도, 해질 무렵의 쓸쓸함은 견디기 어려웠다. 코발트빛과 다홍색이 어우러지는 그 경계의 순간, 낮에 본 느끼함은 저녁의 느끼함을 불러냈다. 단무지는 치킨무로, 사이다는 맥주로, 탕수육은 치킨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환되어 함께할 친구를 기어코 찾아갔다. 


친구를 기다리던 나의 모습과 흡사 닮은 짤



졸업하자마자 외국계 기업에 취직한 그녀는 나의 든든한 치킨 스폰서였다. 회사 근처로 놀러 가면 친구는 가끔 치킨을 사주곤 했다. 지하철 역 앞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면 설렘과 쪽팔림이 교차했다. 퇴근한 직장인들은 조급한 구두 소리를 내며 역사 안으로 퇴장했다. 낮에 일했으니 밤에 쉴 자격이 있는 사람들. 그 사이에 몇 년째 업데이트 되지 않은 옷에 커다란 백팩을 메고 서 있으면 혼자 섬이 된 느낌이었다. 대학생도, 직장인도 될 수 없는 취준생이라는 섬. 희한하게도 치킨 집에만 들어서면 그 못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치맥과 함께 남은 밤을 자축했다. 바삭한 튀김옷 안에 숨겨진 부드러운 가슴살, 그리고 이 느끼함을 목구멍으로 씻어 넘기는 밍밍한 한국산 라거의 조화라니, 캬아! 치킨으로 대동단결이오! 이 맛을 한 공간에서 음미하는 이들을 어찌 경계할 수 있으랴. 이 대중적이고도 평등한 입맛 앞에서 나는 신분을 잠시 망각할 수 있었다. 


그러다 계산할 때가 되면 깨달았다. 친구가 된 이래로 N분의 1 철칙을 공유해 왔건만, 이제는 0 대 All이 되어 있었다. 평등했던 시소는 언제 이렇게 기울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익숙하게 카드를 내밀었다. 생색 한번 낸 적이 없어 친구한테 더 미안했다. 그럼에도 나는 뻔뻔하게 남은 치킨까지 챙기곤 했다. 우리 집에는 나보다 더 가난한 취준생이 있었다. 공무원 준비 중인 오빠에게 그것은 엄청난 특식이 될 터였다. 궁상스러운 나를 보며 친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다. 


그녀의 속내를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취준 3년 만에 입사를 한 나는 친구에게 한 턱 쏘기 위해 그 동네를 다시 방문했다. 오래도록 치킨 성애자였던 친구의 입맛을 고려해 치킨 집으로 가려는데, 그녀가 제동을 걸었다. “야, 나 어제도 치킨 먹었어. 오늘은 다른 거 먹자.” 나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왜? 너 원래 1일 1치킨 하잖아. 오늘도 치킨 집 가자! 맨날 얻어먹었으니 내가 쏠게!” 눈치 없는 나를 향해 친구는 최대한 담백하게 말했다. “그거야 너랑 먹을 만한 게 치킨밖에 없었으니 그랬지….”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냥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친구는 늘 연인과 다양한 해산물을 먹으려 다닌다고 했다. 천호동 꽃게탕, 속초 횟집, 오징어순대…. 나중에 집에 놀러가 보니 와인 병으로 한쪽 벽 선반이 가득했다. 그때는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다. 기념일이면 호텔 뷔페에 간다고 했던가. 그 풍성한 요리를 맛본 혀에 치맥은 그저 만만한 메뉴였던 것이다. 매일 집밥과 학식만을 오가며 살았던 나에게는 가장 호화로운 메뉴인데 말이다. 학생 때와 다름없이 곤궁한 처지였기에, 나는 여전히 친구가 치맥을 제일로 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당시 내 심정은 가수 십센치가 노래를 통해 훌륭하게 표현한 바 있다.  


너의 얘길 들었어. 너는 벌써 30평에 사는구나.
난 매일 라면만 먹어. 나이를 먹어도 입맛이 안 변해.
I’m fine thank you thank you and you.
우리 옛날에 사랑을 했다니 우스워….(중략)

- 십센치, ‘fine thank you and you’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iSgE7uucwe8


이 찌질한 서운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막상 내가 월급을 받아보니, 적금 붓고 학자금 대출 좀 갚으면 생활이 빠듯했다. 점심 때 밥 한 끼 사 먹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친구도 도시락을 싸다닌다고 했던 것 같다. 결혼 준비하느라 자기도 허리띠 졸라매던 형편에 나를 만날 때마다 밥을 사 줬던 것이다. 더군다나 1차 치킨 2차 커피까지 다 내던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러면 평일저녁에만 5만 원을 쓰게 된다. 꽤나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근데 그렇게 몇 번을 쳐 먹은 년이 고작 취직해서 쏜다는 게, 뭐 치킨? 이런 배은망덕하고 쪼잔한 년을 봤나!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배신감을 느낄 사람은 친구다. 따지고 보면, 걸음이 느린 나와 함께 걷기 위해 그녀는 느림보 연기를 한 것뿐이다. 그래, 친구야. 나는 아직도 치킨을 좋아해. 우리 오늘도 치킨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그 따뜻한 하얀 거짓말 덕분에 취준 시절이 외롭지 만은 않았다. 어디 그 친구뿐이랴. 다들 넉넉지도 않은데 나보다 일찍 취직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없이 술을 거둬 먹였다. 그래놓고도 본디 손이 작아서 턱턱 은혜를 갚지 못하고 있다. 이 쪼잔함을 부디 용서해주길 바란다. 


취준생은 유예의 시간을 산다. 취직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온전히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은 길고, 하고픈 말은 더욱 많아진다. 나도 그랬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지만 내일도 힘내보겠다는, 그런 뻔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간절했다. 그때 귀를 빌려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자기네들도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많았을 텐데 그저 묵묵하게 들어주어 고맙다. 그 덕분에 나만의 섬으로 숨지 않고, 세상과 연결된 끈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 그 끈은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다시금 빛을 향해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생명줄이 되어 주었다. 이제 나는 그 끈을 감아 뒤에 오는 이들에게 던져 본다. 취업 준비를 하며 혹독한 계절을 나고 있는 후배들에게 일부러 안부를 묻는다. 그네들이 지치고 힘들 때 꼭 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 친구들로부터 받은 치맥의 은혜를 이렇게라도 갚고 싶다. 


덧붙임: 다행히 (전) 치킨 성애자 친구한테는 빚을 갚을 기회가 빨리 왔다. 그녀가 외국으로 떠나기 전날이 나는 맘먹고 고급 이자카야에서 모듬회에 사케를 대접했다.(월급날 다음이었다.) 친구는 지가 쓴 돈은 기억 못하고 비싼 걸 얻어먹는다며 고마워했다. 오물조물 찰지게 먹던 입모양이 눈에 선하다. 올해 봄이면 그 친구가 한국에 놀러온단다. 치맥이든 회든 스테이크든 할 수 있는 만큼 사 맥일 작정이다. 얼른 벚꽃이 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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