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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화 Feb 22. 2017

시험에 나오지 않는 삶

[내 직업은 취준생] #02. 시간 강박

“우리가 어디 나설 처지냐. TV만 조금 봐도 내가 이래도 되나 죄인 같고, 밥을 먹어도 죄인 같고, 잠을 자도 죄인 같고.”
-tvN 드라마 「혼술남녀」 중에서
노량진 공시족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 <혼술 남녀>의 한 장면. 


나는 시간을 달리고 싶었다 


필기 시험장을 떠올리면 지금도 배가 아프다. 기자를 준비하는 3년 동안 숱한 논술시험을 봤지만, 백지가 주는 공포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논술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60분 이내에 서론, 본론, 결론을 갖춘 1600자 분량의 논리적인 글을 써내야 한다. 시험이 시작되면 처음 10분 정도는 사각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개요를 짜는 시간이다. 그러다 10분이 지나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답안지에 달려들어 일필휘지로 써내려 간다. 책상 위에 A4용지 한 장 놓고 펜을 휘갈기니 딱, 딱, 딱- 원목과의 마찰음이 본격적으로 들린다. 이때부터 초조함이 몰려온다. 태생이 느린 나는 개요를 짜는 데만도 15~20분이 걸린다. 커져가는 펜 소리는 남들은 진즉에 출발선을 끊고 나갔는데 나만 아직도 신발 끈을 묶고 있다는 신호다. 경쟁자들의 펜이 내 심장에 대고 방망이질하는 것만 같다.

 

30분쯤 지나면 전쟁이다. 마음이 바쁜 만큼 펜 소리도 점점 크고 빨라진다. 적토마 수십 마리가 뛰어가는 말발굽소리가 이럴까 싶다. 답안지를 걷을 때가 가까워오면 그것은 시계 초침과 섞여 천둥소리처럼 들려온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손이 떨려서 문장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얼른 마무리하고 오탈자 있는지 한번 읽어봐야 하는데…. 야속한 종이 울리고 감독관이 답안지를 걷어간다. 허탈하다. 머릿속에는 분명 더 좋은 생각이 있었는데 반의반도 표현하지 못했다. 똑같은 시간에 누구는 진즉에 글 완성하고 퇴고까지 하는데, 나는 왜 그러질 못하는 걸까. 밀도 있게 살지 못하는, 대책 없이 느려서 자기 발목을 잡는 내가, 나는 너무 미웠다.   


일상생활에서도 늘 초조했다. 언론사 논술 아카데미를 함께 다녔던 동기들은 대부분 취업 준비만 했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나는 2년 동안 계약직 조교로 일하며 공부를 병행했다. 다른 일에 비해서는 시간 여유가 있었지만, 온전히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는 동안 동기들의 합격 소식이 차례차례 들려왔다. 그들은 뛰고 나는 걸었으니 정직한 결과였다. 겨우 조교를 마치고 전업 언론고시생이 되었을 때, 일찌감치 취직한 대학 동기들은 청첩장을 건넸다. 한 걸음 뒤처진 줄 알았는데 그네들은 미지의 세계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오빠는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다. 일하는 엄마는 나날이 지치고 늙어갔다. 나는 느려도 너무 느렸다. 입으로는 그저 출발이 느린 ‘슬로우 스타터’라고 자위했지만, 실은 영영 트랙을 달려보지도 못할까 두려웠다.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시험장에서 백지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다.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은 꼭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취준생 A의 보편적인 하루 


물론 몸은 내 마음 같지 않다. 나를 일으켜서 책상 앞에 앉히는 것부터가 험난한 미션이다. 대게 평일은 다음과 같이 굴러갔다. 아침 8시, 출근하는 엄마가 현관문 닫는 소리에 깬다. 그러고도 30분을 더 이불에서 꿈지럭거린다. 그 틈에 오빠가 일어나서 씻고 아침상을 차린다. 이불을 개고 멍한 눈으로 앉아 한술 뜨고 있으면, 오빠는 10분 만에 밥을 먹고 일어선다. 설거지는 내 몫이다. 그릇을 헹구고 있으면 이 인간은 벌써 나가고 없다. 또 졌다. 오빠는 빡빡머리에 365일 교복 같은 추리닝을 입고 집 앞 독서실로 향하니, 그 효율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나는 머리 감고 말리고 비비크림만 찍어 발라도 최소 30분이다. 여자라서 생기는 비효율이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집을 나서면 10시. 도서관까지는 자전거로 45분 거리다. 자리 잡고 카누 커피를 한 잔 타서, 주섬주섬 세팅을 마치면 최소 11시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마치 9시부터 나와 있었던 것처럼 열나게 집중하고 있다. 이것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날이면, 자괴감에 머리 빡빡 깎고 고시원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삶 따위 생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다음 미션은 신문 읽기다. 2시간 안에 32면짜리 종이 신문을 정독하고, 스크랩까지 마쳐야 한다. 문제는 이번에도 몸이다. 유산소 운동을 격렬하게 한 뒤라 졸음이 몰려온다. 사회 면까지는 어떻게 참고 읽겠는데, 국제 면쯤 되면 같은 줄을 읽고 또 읽고 있다. 사설 면에 이르면 혼수상태다. 침이 서늘하게 말라붙을 때쯤 일어나면 이미 1시간 반이 지나 있다. 나는 애꿎은 싸구려 커피를 욕한다. 그렇게 또 스스로 약속한 시간을 지나 스크랩을 마치고 나니, 배가 고파온다. 서울대의 훌륭한 어플로 각 식당 메뉴를 검색해보고, 좀 더 맛있어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주제에 남의 학교에서 먹고살겠다고 메뉴를 고르는 자신이 한심하다. 혼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소화할 겸 도서관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한다. 흐드러진 벚꽃, 늦여름의 산바람, 짙은 단풍, 한겨울의 눈꽃까지 그곳의 사계절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름다웠다. 스스로 피고 지는 나무를 보면 부러웠다. 하늘은 그들에게 왜 빨리 자라지 않느냐고 재촉하지 않는다. 


오후 일정은 스터디에서 썼던 글을 퇴고하는 것이 전부다. 글이 안 풀릴 때면 인풋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교내 서점으로 도피했다. 거기서 소설을 읽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탈이었다. 어느 공무원 수험생이 쓴 글에서 한국사를 공부하다 답답해서 뛰쳐나간 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대목을 보고 백 번 공감했다. 그렇다. 먹고 자고 싸는 기초적인 생활에서조차 효율성을 추구하는 취준생이 놀아봤자 어딜 가겠나. 양심의 가책을 덜려면 넓은 의미에서 취준에 도움이 되는 문화생활을 택할 수밖에. 나는 작문을 쓰려면 감성을 키워야 한다며 소설 읽기를 합리화했다. 이만한 길티플레저가 없다. 


어쨌든 글을 완성하면 다행인데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날은 헛헛한 마음에 쉬이 잠들지 못했다. 의미 없는 TV 예능을 켜놓고 일부러 정신을 방전시켰다. 오늘 하루 별로 한 게 없다는 우울한 사실을 잊기 위함이다. 그리고 또 다시 다짐, 반복되는 하루. 자기절제를 시험하는 러닝머신 위에서 나는 언제나 패자였다. 그렇게 죄책감은 쌓여만 갔다. 

 

 

인간이라 죄송합니다 

 

육체의 한계와 감정의 변화. 나는 이 두 가지를 넘어서지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자고, 왜 빵으로는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며, 툭하면 아프기 일쑤인가? 공부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에, 무슨 글쟁이 흉내를 낸답시고 계절을 만끽하고 소설책을 뒤적이는가? 나는 왜 예민하고 불안하고 우울한가? 나는 왜 여자인가? 나는 왜 나인가? 도대체 왜! 그렇게 수없이  다그치다보면 마침내 인간으로 태어난 것마저 혐오스러워졌다. 감상적이고 나약해 빠진 인간으로 살 바에야, 차라리 기계가 되는 게 낫다. 오로지 목표만을 위해 돌진하는 기계가 되고 싶다. ‘심장을 꺼내놓고 뇌에 인터넷을 연결하자. 삼시세끼 필요 없이 영양제만 먹는 거야. 장소도 상관없으니 바로 눈 뜨면 앉은 자리에서 학습하자. 역사와 고전에 통달해서 모든 지식을 저장한 다음, 그대로 시험장에 가는 거야. 펜 소리 따위는 얼마나 크던 상관없겠지. 기계는 초조함을 모르니까. 60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완벽한 논술을 써 내려 가는 거야. 그리고 합격하면 다시 심장을 갈아 끼운 다음 인간으로 돌아오자.’ 악마가 이런 제안을 속삭였다면 나는 틀림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아야나미 레이. 기계도 이 정도 스펙이라면 심각하게 고려해보겠다. 

자세한 설명은 나무위키 참조. 

https://namu.wiki/w/%EC%95%84%EC%95%BC%EB%82%98%EB%AF%B8%20%EB%A0%88%EC%9D%B4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모든 경험은 흔적을 남긴다. 나는 여전히 시간 강박을 앓고 있다. 마치 DNA에 새겨진 것만 갔다. 오늘도 일직선으로 놓인 시간의 레일 위에서 빨리 가라며 나를 등 떠민다. 그럴 때일수록 차라리 멈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가 곰곰 생각해 본다. 평생을 시간을 통제해야 대상으로 보려니 사는 게 너무 버겁다. 이제는 그냥 친구처럼 흘러가고 싶다.   


돌이켜 보면 다 필요한 일이었다. 그때 자전거 타고 산책이라도 했으니 그 정도 체력이라도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예민하고 불안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글을 쓰지도 않았을 테고, 기자라는 꿈도 꾸지 않았겠지. TV 시청은 무쓸모 짓이라는 거 인정. 그래도 라디오스타가 있어 일주일에 한 번 웃을 수 있었다. 그땐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나무도, 기계도 되지 못한 내가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숨구멍을 모두 길티플레저로 치부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 시절의 나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2월, 도서관에 가 보니 새 학기를 앞두고 뭔가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밥 먹으면서 공부하는 사람, 전화하며 프린트를 읽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때의 나를 본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삶을 생략하는 법 따위는 없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먹고 자고 싸는 시간은 필요하고, 체력도 길러야 하며, 험난한 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일상에 작은 즐거움 하나쯤은 남겨 놓는 게 좋다. 준비하는 시간도 결국은 삶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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