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신 프로즈 作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 감상
‘누구나 소설을 쓰는 시대’라지만, 정말로 소설은 배울 수 있는 걸까? 프랜신 프로즈는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그 물음에 “작품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단언한다. 문예창작 수업이나 이론서가 아닌, 위대한 작가들의 문장을 천천히 읽고, 해부하듯 분석하며 소설의 본질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인물의 제스처와 대화까지—프로즈는 약 100여 명의 작가들의 글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읽고, 다시 읽고, 흡수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문장의 리듬을 익히고, 인물을 살리는 세부 묘사의 힘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조언, “속도를 늦추고, 육식동물처럼 읽어라”는 메시지를 정중하고도 강력하게 전한다.
제 1장 -소설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언어에 대한 사랑은 배울 수 있는가? 이야기꾼의 재능은 배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저자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이것은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이 부분에서는 어떠한 작법서도 해결해주지 못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이지, 글을 쓰고 싶은 것인지 고민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위 질문에서 제시한 언어에 대한 사랑과 이야기꾼의 재능 또한 고민해보려 한다.
1장에서는 전체적으로 습작과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단 습작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문장을 보고 불필요한 것, 위치를 변경해야 할 것, 고쳐야 할 것, 늘려야 할 것, 삭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능력은 위 질문과 다르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일단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부터 짚어보며 또 다른 것들을 생각해보려 한다. 명료하고 경제적이고 선명한 문장, 즉 좋은 문장이 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되짚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다짐이다.
습작은 필사도 있고, 막연한 습작도 있고, 첨삭까지 포함될 수 있다. 훌륭한 소설가들의 작품을 인용한 어느 에세이에서 그들의 작품 가운데 긴 문단을 베껴 쓰고 났을 때, 나는 내 글이 잠시 동안이나마 더 매끄러워진 것을 깨달았다는 저자의 말처럼 필사는 우리의 눈높이와 사유의 폭을 더 넓고 깊게 할 수 있으며, 단순한 모방을 떠나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 습관을 기르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단어 하나하나의 목숨을 재판에 회부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말의 토씨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습작의 기본 자세를 통해야만 좋은 덩어리, 좋은 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도 공감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과의 공유를 통해, 가르침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말마따나 첨삭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시각에서 또 다른 느낌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에 절실한 동의를 하는 바이다. 곧 1장에서 저자는 우리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잘 쓰기 위해 왜 필사하고 첨삭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독서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독서를 통해 같은 패턴과 연관을 추적하는 과정은 우리가 우리의 소설을 쓸 때 항상 염두해야 하는 것이다. 읽기는 또 다른 쓰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잘 쓰여진 글을 읽어야만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다보면, 독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신비평을 배우면서 작품에 쓰인 것을 중요시하고 작가의 전기나 작품이 쓰인 시대에 대해서는 간략히 언급만 하고 지나가는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고 저술했다. 즉 작품에 집중하고 꼼꼼히 읽기에 대한 신념은 꼼꼼히 쓰는 것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책 읽기는 책 쓰기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는 대개의 경우 무엇을 잘못 썼는지, 어떤 부분을 고치고 삭제하고 늘려야 하는지에 중점을 둔다. 반면에 명작을 읽는 일은 작가가 어떻게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 냈는지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고취시킨다. 독서는 쓰기의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제시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관계있다는 이유로 선택된 죄 없는 천재를 자신의 실패 징조로 여기며, 이럴 경우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유형의 작품을 읽는 것이 유일한 치유법이라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과 비슷한 것을 고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이 작품들 간의 차이점은 예술의 전당 속에 얼마나 많은 방이 있는지 상기시켜준다고 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방면의 독서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라 판단된다.
또한 자신의 작품과 비슷한 것을 고르는 것도 필요하다. 바벨의 작품에서는 자주 폭력 직전에 강렬하고 서정적인 묘사가 등장하는데, 초승달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 후 곧바로 대혼란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 대목은 저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필자의 소설과 대비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습작한 부분도 비슷한 상황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명작의 작가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나와는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 확인하며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전제척으로 저자는 두 가지의 가장 큰 범위의 습작법인 독서와 쓰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창작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1장에서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제 2장 -틀렸지만 전적으로 옳은 단어 선택
저자는 독자의 임무 중 하나는 어떤 작가들이 살아남는 이유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독자라면 그 살아남는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 살아남는 이유는 작가들의 ‘옳은 단어 선택’이다. 우리는 명작의 독서를 천천히 늦추고 단어 하나하나를 읽는 일이 필요하다.
저자의 말처럼 단어는 문학의 원재료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쉽게 간과하고 만다. 단어는 무궁무진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작가들은 단어를 다른 단어로 변환하고, 선택하는 솜씨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단어는 문장의 기본 요소이고, 단어 하나에 따라 문장도 달라진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단어'는 소설의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어예술의 가장 작은 단위이기 때문이다. 작은 것부터, 세밀한 것부터 다루는 것이 역량 있는 작가일 것이고, 그렇기에 저자가 제시한 명작가들은 단어를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맨스필드는 작품 어디를 펼쳐도 영감 어린 단어 선택을 보여주는 세련된 작가 중 한 명이다. 리처드 예이츠 또한 누구 못지않게 직접적이고 파괴적이며, 모든 것을 적절히 선택된 단어 위에 균형을 이루도록 변환하는 데 능숙하다. 앨리스 먼로는 전혀 주의를 끌지 않는 것, 독자가 주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녀가 구사하는 문체의 핵심이지만, 그녀의 작품을 주의 깊게 읽으면 단어 하나하나가, 더 직접적이고 덜 번잡스럽고 꾸미지 않은 채 그녀가 말하는 내용을 그 이상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단어 하나에 따라서, 목적어를 생략함으로써, 말줄임표만 남김으로써 독자마다 다르게 파악할 수 있는 미묘함과 복잡함이 결부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단어의 탁월한 선택을 위해 책을 대략 훑어 읽는 방법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작가들이 왜 그 단어를 선택했는지 연구해보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고, 우리가 창작을 할 때에도 삭제하고 더 나은 단어로 바꾸기를 거듭하며 압축적이고 완벽하고 고통스러울 만큼 정직한 문장을 탄생시켜야 한다. 좋은 문장은 옳은 단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익숙한 단어를 새로운 각도에서 사용해보기도 하고, 생소한 단어를 조합하여 색다른 분위기를 탄생시키는 등 단어의 선택을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제 3장 -아름다운 문장이란 무엇인가?
저자의 말처럼 작가가 그 무엇보다도 정말 쓰고 싶은 것은 훌륭한 문장이다. 잘 짜인 문장은 시대와 장르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또한 매끈한 문장은 독자들로 하여금 가독성 있는 독서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름다운 문장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그에 대한 대답이 궁극적으로 그림이나 사람 얼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계량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그것은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좋은 문장은 어떤 틀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일단 좋은 문장은 명료하다. 긴 문장이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좋은 문장은 경제적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은 압축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글을 고치는 과정에서 작가들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질문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 단어가 내가 찾을 수 있는 최선인가? 의미가 분명한가? 이 문장에서 본질적인 것을 희생하지 않고 한 단어나 구절을 잘라낼 수 있는가? 이 문장은 문법에 맞는가?'라는 것이다.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고민을 해야 하고, 세세한 판단들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리듬은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산문에서도 중요하다. 저자는 자신이 쓴 작품을 큰 소리로 읽으라고 강조한다. 읽을 때마다 더듬거리는 표현이 있다면 그 문장은 더 매끄럽고 유창하게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에는 음악을 통한 리듬이 몸에 배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으로 리듬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 가운데는 리듬의 내용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내용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대목들이 많다. 문장은 마치 음악처럼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좋은 문장에 리듬까지 가미가 된다면 그 문장의 영향력과 울림은 더욱 생동감 있게 요동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문장을 기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명작을 읽으라고 말한다. 기존의 좋은 작가들은 몇 마디 짧은 구절 속에 참으로 많은 것을 집어넣고 있다.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 그것이 자신의 창작에서도 구현될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말대로 서가 한 부분을 정해서, 고치고 다듬어 우리를 눈부시게 하는 문장을 만들어 낸 작가들의 책을 꽂아 두는 것도 좋은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문장들이 느슨해지고 모호해질 때 보면 자극이 되고, 좋은 문장을 인식할 수가 있다.
저자는 헤밍웨이의 소설의 문장에서 단어의 반복과 리듬, 대화체, 그리고 시와 일상어의 독특한 개성의 혼합물을 주조해 내는 언어가 드러난다고 했다. 헤밍웨이가 그런 문장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항상 훌륭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문장에 대해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글을 쓸 때 항상 복잡함이나 꾸밈보다 문장의 가독성과 우아함을 생각해야 하며, 그 문장이 표현하려는 것을 완벽히 전달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