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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보통 사람을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비밀 -2

프랜신 프로즈 作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 감상

by 오로지오롯이

[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제 4장 -문단은 소설가의 DNA와 같다


사실 글을 쓰면서 문단에 대해 그리 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문단을 어디서 끊을까 하는 생각은 몇 번 한 적이 있었지만, 문단이 소설 전체적인 부분에 얼마나 차지하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겐 문장과 단어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필독서의 4장 주제인 '문단'을 보면서 문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바벨은 문단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문단을 나누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새 문단은 살짝 리듬을 바꿔 주기도 하고, 같은 풍경을 다른 경관으로 만드는 번개의 섬광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문단은 정녕 그런 역할을 해왔단 말인가. 저자는 말한다. 문장을 주목할 만한 것으로 의식하는 순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듯, 문단에 대해 생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남들보다 앞서 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글을 쓸 때 문단을 왜 의식해야 할까.


저자에 따르면 문단은 일종의 호흡이다. 각 문단은 연장된 숨쉬기라고 할 수 있다. 문단의 시작 부분에서 숨을 들이쉬고 끝 부분에서 내쉰다. 그리고 다음 문단이 시작될 때 다시 들이쉰다. 그렇기에 문장은 호흡과 리듬을 가진다. 또한 바벨은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단은 논리적 사고뿐만 아니라 시각적 배려를 고려해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의미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지라도 긴 문단을 두 개로 나누면 시각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는 항상 그것 때문에 문단을 의식했다. 글자가 한 페이지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너무나 답답하지 않는가. 그건 가독성을 방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또한 바벨은 짧은 문단을 속사포처럼 쏘아 대면 주의를 산만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짧은 문단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그것은 성가신 경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게으른 작가가 이 수법을 이용해 독자에게 주목을 강요하거나 서사에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으려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한 문장 문단은 매우 절제해서 써야 한다. 그러나 그런 문단이 정말 필요할 때가 있는데, 독립된 문장을 써서 주의를 끌고 싶다면 그 문장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다소 예외적이고 주목을 끄는 장치를 정단화할 만큼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부지런한 작가가 소설적 효과를 생각해서 한 문장 문단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굳이 지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문단의 변화는 시점의 미세한 변화를 뜻하거나, 영화에서 카메라의 앵글이 변하듯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을 뜻한다는 말에서는 큰 공감이 갔다. 한 문단에서의 시점 혼용은 가독성에 큰 방해가 되며, 정돈되지 못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단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관심이 쏠렸다. 발자크와 스탈당의 문단과 게리 슈테인가르트의 소설에서는 마치 카메라가 점점 클로즈업을 하듯 묘사의 시점이 이동한다는 말에 문단 속에서 문장을 전략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또한 데니스 존슨의 첫 소설 천사들의 첫 문단들에서 일련의 미묘한 관점과 시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문단을 소설 속의 작은 이야기로 간주해서 그 문단만의 이야기를 창조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문단 속에서 어조의 변화, 논리의 변화, 리듬의 변화 등 다양한 문단의 활용을 의식하고 쓰다보면 저자가 말한 DNA의 흔적이 우리 몸에도 남아 고유한 특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제 5장 -이야기는 스스로 시점을 선택한다


처음부터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야기의 내용과 전달 방식과 독자가 추측한 그 이야기의 의도를 통해 시점을 선택하고 인물을 드러낸다. 즉 시점은 이야기에 맞춰서 변용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시점을 고민하기 이전에 이야기를 전하는 최상의 방법을 고민해야 맞는 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도스코예프스키는 서사의 문제, 즉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둘러싼 까다롭고 심지어는 잘못된 결정들에 대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고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일단 일인칭 서사는 일인칭 서술을 끌고 갈 수 있는 등장인물의 숫자만큼, 즉 무한히 다양하다. 그리고 저자는 언어를 솜씨 있게 다룸으로써 소설가들은 화자의 개성을 몇 개의 문장이나 문단으로 확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장편소설 수백 쪽을 읽는 동안 그 화자와 동행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일인칭 시점의 기술적 한계를 피하면서도 일인칭의 밀도와 긴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밀착된 삼인칭 서술을 유지하되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인공의 의식과 합쳐지도록 할 수도 있다. 또한 전지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도 있다. 전지적인 화자의 성격 역시 매우 특별하고, 심지어는 변덕스럽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별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이 눈동자가 공정하고 객관적이거나, 대상을 의견과 판단 없이 바라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지적인 시점도 이야기에 맞춰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서 다양한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작가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대개 시점을 정하고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고 배우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만 모든 규칙이 그렇듯 이 역시도 솜씨 있는 작가라면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다고 본다. 일례로 마담보바리는 엠마 보바리의 미래 남편의 동창생 시점으로 시작하는데, 이 화자는 이후에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듯 그 상황의 이야기에 따라 시점도 그에 맞게 변형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작가가 이야기의 시점을 선택할 때, 또는 더 자주 일어나는 일처럼 이야기가 스스로 쓰이고 싶은 시점을 선택할 때, 그와는 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즉 일인칭과 삼인칭 시점 두 개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여러 종류의 요리가 나오는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다섯 개의 식품군만 알면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서술하는 방식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선택 항목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많은 변화가 존재하며,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소설 창작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방향을 찾도록 돕는다. 정리된 이론이나 공식은 없지만, 다양한 작가들의 문장을 통해 창작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한다. 단점이 있다면 구체적인 작법보다는 ‘읽기의 중요성’에 집중해 실전적인 지침을 기대한 독자에겐 아쉬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읽기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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