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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프랑스 68의 봄, 그리고 우리 87의 여름

거리에서 시작된 질문들

by 오로지오롯이



기억 속으로 불쑥 들어온 1968


20세기의 사건을 돌아보던 잡지 기사에서 ‘68혁명’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다른 수업에서 관련 책들을 넘기며 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닮은 점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68의 거리와 87의 광장을 함께 떠올리게 됐다. IMF와 실업률, 개혁 구호에 지친 지금의 우리도 어쩌면 비슷한 벽을 마주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68과 87, 두 시공간의 사건을 통해 우리 시대의 변화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낭테르에서 라틴가로


프랑스의 68년은 전쟁의 상처가 거의 아물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낡은 규율과 권위주의에 묶여 있었다. 대학은 폐쇄적이었고 언론은 고답적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커지자 젊은 세대는 거리로 나섰다. 낭테르 대학에서 시작된 학내 갈등은 소르본 점거, 라틴가 시위로 번졌다. 경찰 투입은 불씨에 기름을 부었고, 노조의 총파업이 결합하면서 사태는 전국적 저항으로 확산됐다.


한 달 남짓한 격렬한 저항은 드골 정권의 총선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대학 운영 개혁과 교육 민주화 같은 씨앗은 분명 그때 뿌려졌다.



얼굴 없는 혁명


이 운동은 단순한 정치투쟁을 넘어 문화적 반란이었다. 그들은 임금 인상보다 인간다운 삶을, 제도적 자유보다 표현의 자유를 원했다. “삶을 변화시키자”라는 구호는 단순한 시위 문구가 아니라 세대의 선언이었다. 그래서 68혁명은 정권교체가 아닌 삶의 문법을 바꾸는 혁명이었다. 정치적 결론이 미완으로 끝났어도, 프랑스 사회 곳곳에서 조금씩 변화를 시작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68의 봄은 현실이 되었다. 선거 연령이 낮아져 18세 청년이 투표권을 얻었고, 대학 규율은 완화됐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눈에 띄게 확대되었으며, 언론 개혁도 1980년대 들어 구체적 결실을 맺었다. 68의 함성은 제도와 문화를 조금씩 움직였고, 1981년 사회당 집권이라는 장기적 성과로 이어졌다.





명동과 라틴가의 평행선


이쯤에서 한국의 1987년 6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80년대 한국은 올림픽을 앞둔 경제 호황 속에서도 군부독재가 버티고 있었다. 학생과 시민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결국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한 6·29 선언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반년 뒤 대선에서 집권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그 결실은 온전히 승리라 부르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권위주의의 해체는 시작되었고, 한국 사회는 빠르게 민주화와 개방화의 길을 걸었다. 라틴가의 돌과 명동의 최루탄은 다른 대륙, 다른 시간의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닮은 점과 다른 점


프랑스와 한국의 사건은 모두 풍요의 시대에 터진 불만이었다. 대학의 대중화, 제도의 경직, 중산층의 동조가 공통된 배경이었다. 차이라면 프랑스는 문화와 생활의 변혁에, 한국은 정치 권력의 정당성 회복에 무게를 두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자가 총파업으로 참여했지만 한국의 노동자는 6월 이후에야 투쟁을 본격화했다.


드골은 국민투표에서 패배하자 약속대로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카리스마를 권력에 매달기보다 깔끔히 내려놓았다. 한국은 조금 달랐다. 3당 합당이라는 정치공학으로 권력을 이어가려 했고, 정권교체는 10년 뒤에야 이뤄졌다. 프랑스가 제도의 시간을 택했다면 한국은 조금 더 험난한 우회를 거쳐 민주주의의 다음 장으로 넘어간 셈이다.



다시, 우리의 현재형


두 사건이 남긴 것은 완결된 혁명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질문이다. 왜 안정 속에서도 변화를 요구하는가? 왜 젊은 세대는 늘 거리로 나와야 하는가?


68과 87은 우리에게 정치적 교체를 넘어 삶의 혁명을 요구한다. 의사결정의 투명성, 세대 간 존중, 교육과 노동에서의 참여 확대. 이 모든 것이 또 다른 혁명의 형태일지 모른다. 68의 봄과 87의 여름은 이미 지난 일이지만, 그 열망과 질문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살아 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현재형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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