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에 대한 단편
표제처럼 단정한 제목의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문학과지성사, 2013)는 일곱 편의 단편을 묶은 천운영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2012년 이상문학상 우수작에 오른 동명 단편을 중심으로, 모성과 애도의 감각을 여러 각도에서 비춘다. 출판 소개가 밝히듯 이번 책은 “엄마(모성)”을 키워드로 삼되,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엄마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서정을 탐색한다. 「엄마도 아시다시피」는 그 축의 한가운데에 서서, 상실 이후 주체의 일상 리듬이 어떻게 파괴되고 다시 조정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흥미로운 맥락도 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단편들이 장편 『생강』을 전후해 쓰인 작업이며, 관심이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이동하는 변곡점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즉 이 소설집은 한 작가의 애도·기억 주제를 모성의 자리에서 재배치한 결과물인 셈이다
작품 스타일
천운영의 글에는 다른 작가들과 확실히 구별되는 독특한 감각이 있다. 나는 그걸 ‘몸의 문체’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사물, 냄새, 손끝의 감각, 음식의 질감 같은 촉각적 요소를 앞세운다. 인물의 정서는 감정선이 아니라 감각선을 따라 움직인다.
그의 문장은 조용하다.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묘하게 생생한 리듬이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마치 그 공간에 앉아 있는 듯한 감각이 따라붙는다. 천운영은 이런 감각적 문장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파고든다. 눈물을 묘사하지 않아도 눈물이 흐르고,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외로움이 전달된다. 이것이 바로 천운영의 소설이 지닌 독보적인 매력이다.
수록작 中 [엄마도 아시다시피] 감상
상실은 조용하게, 그러나 정밀하게 일상을 무너뜨린다
이 소설이 마음을 흔드는 지점은 어머니의 죽음이 한 번의 충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순간보다 더 길게 남는 건, 그 후에 천천히 스며드는 리듬의 어긋남이다. 주인공은 어느 날 문득 책 한 권을 끝내지 못하고, 걷는 속도가 사람들과 어긋나는 것을 느낀다. 어머니의 부재는 거대한 사건이라기보다 삶의 ‘박자’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일상적 침투로 표현된다.
천운영은 슬픔을 감정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어깨를 조금 더 무겁게 만들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낯선 침묵을 일상에 들이밀어 정밀하게 감정의 변화를 재현한다. 마치 고요한 방에 천천히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주인공의 세계에도 작은 균열이 점점 번져나간다.
사물이 부재의 크기를 증언한다
작품 속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사물의 존재감이다. 손수건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 주인공의 시간은 멈춘 듯 흔들린다. 그 손수건은 어머니의 손을 대신했던 존재였고, 늘 곁에 있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였다. 보료에 남아 있는 움푹 팬 자국, 돋보기의 반짝임, 봉투나 팔레트 같은 생활용품들은 모두 그저 물건이 아니다. 부재를 측정하는 도구, 슬픔을 불러오는 감각의 스위치다.
억눌렸던 슬픔의 파열
슬픔은 때로 장례식장에서 터지지 않는다. 가장 평범한 일상,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터져 나온다. 주인공에게 그것은 뼈다귀해장국 식당이었다. 뜨거운 국물의 열기, 식당의 냄새, 웅성거리는 소리, 젓가락을 쥔 손의 떨림. 이 모든 감각이 겹쳐지는 순간, 감정은 폭발한다.
그 울음은 준비된 애도가 아니다. 억눌렸던 무언가가 몸을 통해 터져나오는 반사작용에 가깝다. 천운영은 이 장면에서 심리 묘사가 아니라 감각 묘사를 선택한다. 독자는 ‘왜’ 슬퍼하는지를 이해하는 대신, ‘어떻게’ 슬픔이 몸으로 터져 나오는지를 함께 느낀다. 이 장면이 강렬하게 남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내 울음소리가 엄마의 목소리였다”
주인공이 자신의 울음이 곧 어머니의 목소리였음을 깨닫는 순간, 이야기는 감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정체성의 이동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된다. 어머니가 살아생전 강하고 담담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목소리는 사실 슬픔으로 눌러놓은 울음의 형태였고, 아들은 자신의 울음소리 속에서 그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곧 애도의 계승이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단순히 그리워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을 자기 안으로 들이는 일이다. 주인공은 이 순간 어머니의 슬픔을 이해하고, 그 슬픔을 자신의 몸으로 재현하며, 비로소 부재를 실감한다. 이 한 문장이 소설 전체를 뚫고 흐르는 심장 같은 구절이다.
내가 다시 뱉어낸 어머니
제삿날의 상징적인 장면에서 주인공은 마치 어머니를 목구멍에서 다시 ‘낳는’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천운영은 이를 아주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지만, 그 장면의 상징성은 강렬하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목소리와 감정은 주인공의 몸에서 다시 태어난다. 이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생생한 전이의 장면이다. 슬픔은 죽지 않고, 목소리의 통로를 통해 살아남는다.
음악과 감각으로 배우는 애도
주인공은 어머니가 좋아하던 샹송을 따라 부른다.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그는 음정과 박자를 똑같이 따라 부르며 어머니의 리듬을 자신의 몸에 새겨 넣는다. 사물(손수건, 보료), 음악, 그리고 목소리가 하나의 경로를 이루어, 애도는 생각이 아니라 몸의 기억으로 변한다.
작품에서는 이 과정을 서사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느리게 반복되는 행위, 조용한 감각, 음성의 떨림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마치 내가 직접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슬픔은 조용히 스며들고, 목소리로 남는다
이 작품은 플롯이 크지 않다. 사건도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감정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슬픔은 거대한 폭풍이 아니라, 아주 미세하게 삶의 빈자리로 스며드는 안개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안개는 결국 목소리가 되어 터져 나온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곧장 떠올렸다. 어쩌면 애도란 거창한 제의나 말이 아니라, 그렇게 사소한 순간에 찾아오는 자기 몸의 울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