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란 이름으로 처음 남기는 그의 기록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 마음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막상 쓰려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분의 삶은 거창하지 않았고, 특별한 사건으로 채워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한 날들의 반복 속에서도 한 사람의 세계가 얼마나 단단할 수 있는지를 나는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그렇기에 이제는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며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그분의 걸음과 숨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묵묵한 마음을 글로 남겨두고 싶다. 말로는 다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아버지는 1963년 강원도의 산골에서 태어났다. 겨울이면 눈이 허리까지 쌓이고, 봄이 와도 바람이 매서운 곳이었다. 전쟁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던 시절,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보다 땅을 더 많이 바라보며 살았다. 그 속에서 아버지는 일찍 어른이 되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절제, 그리고 책임의 연속이었다. 밭일이 끝나면 산으로 약초를 캐러 다니고, 마을 어귀의 장작더미를 정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친구들이 놀 때, 그는 늘 일을 택했다. 그때의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성격이 되었고, 그 안에서 배운 근면함은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지탱한다.
그 시절의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자 생계를 위한 탈출구였다. 그는 늘 상위권이었지만, 성적보다 중요한 건 가족의 밥상이었다. 새 교과서를 받으면 설레면서도 그 종이 냄새가 왠지 죄스럽게 느껴졌다고 했다. 공부를 놓을 수는 없었지만, 우선순위는 늘 생존이었다.
청소년기에는 방황도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을 꾀어 불법적인 일을 시키던 어른들이 있었고, 그는 잠시 그 경계선에 섰다. 그러나 곧 자신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어떤 말보다 침묵이 더 큰 가르침이었던 시대였다. 그 시절의 짧은 방황은 아버지에게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새겨주었다.
열아홉의 나이에 그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손에는 김밥 한 줄과 공장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뿐이었다. 신발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하루 열두 시간씩 서서 일했고, 손가락엔 굳은살이 박였다. 본드 냄새와 가죽 먼지 속에서 기술을 배우고 사람을 배웠다. 겨울엔 손이 갈라져 피가 나도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세상보다 자신의 부서지던 손을 믿었다.
몇 해 뒤, 작은 공장을 차렸다. 구두를 만들고, 팔고, 다시 만들며 매일을 버텼다. 기술은 정직했고, 손끝의 정성은 배신하지 않았다. 공장은 번창했고, 그는 자신이 만든 신발을 거리에서 볼 때마다 어깨를 폈다. “사람이 만든 건 결국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났다. 아버지는 집을 장만하고, 부모를 모셨다. 그것이 그 세대의 순리이자 의무였다. 어린 시절, 퇴근 후에도 작업복을 벗지 못한 채 식탁에 앉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표정에는 늘 안도감이 있었다. “오늘도 하루를 버텼다”는 확신 같은 것.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또 한 번의 시험을 주었다. 1997년, 경제위기의 바람이 불었다. 공장은 휘청였고, 시장에는 값싼 수입품이 쏟아졌다. 동료들이 하나둘 떠났다. 손으로 만들어 온 삶이, 눈앞에서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럼에도 그는 일을 놓지 않았다. 기술을 배운 손은 무기였고, 그 손이 멈추면 삶도 멈출 것 같았다.
그 이후의 시간들은 조용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했고, 때로는 무겁지만 고요했다. 세상은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구두를 만들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정직하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그 일을 그는 쉰 해 가까이 이어왔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생의 방식이었다.
아버지는 가끔 그런 말을 하신다.
“나는 이제 지는 해고, 너희는 떠오르는 해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따뜻해진다. 지는 해라고 말하지만, 그 빛은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 빛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설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대단치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그 삶은 단단한 사람의 무게로 완성된 시간이었다. 세상이 흔들려도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흐트러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꾸밈없는 존엄이었다.
이따금 그 손을 본다. 오래된 상처, 굳은살, 꺾인 손톱. 그러나 그 손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손이 나를 키웠고, 우리 가족의 시간을 쌓았다. 나는 그 손의 시간을 닮고 싶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 오늘의 아버지처럼 조용히 빛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어 아버지를 닮아간다. 닮는다는 건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다. 묵묵히, 그러나 흔들리지 않게. 아버지가 그렇게 걸어온 것처럼, 나도 내 길을 걷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삶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분의 시간 속에 내 시간이 있고, 그분의 손끝에 내 하루가 있다.
아버지의 인생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한 문장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