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기적은 언제나 한쪽의 시선이다

'크리스마스의 악몽' 프로젝트 연작시 소개

by 오로지오롯이



겨울이 오면 세상은 유난히 번쩍인다. 거리에는 불빛이 걸리고, 트리 전구는 별빛처럼 깜빡인다. 굴뚝에는 산타가 내려오고, 루돌프는 하늘을 달리며, 아이들은 포장지를 찢는 소리에 들뜬다. 사람들은 이 풍경을 기적이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그 반짝임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축제의 환희는 언제나 한쪽의 시선으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보지 않는 뒤편에는 이 계절을 침묵으로 떠받치는 존재들이 있다. 웃음을 강요받는 자, 달릴 수밖에 없는 자, 서서히 균열 속에서 썩어가는 자, 그리고 따뜻한 손에 만들어지고 가장 먼저 잊히는 자. 나는 이 익숙한 풍경을 뒤집어 보고 싶었다. 브런치 매거진 프로젝트 『크리스마스의 악몽』에 참여한 그 순간부터, 나는 그 반짝임의 뒤편에 자리한 얼굴들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갖고자 노력했다.


이 뒤로는 이번 매거진 프로젝트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위해 필자가 작성한 연작시들을 순서대로 소개하려 한다. 개인적으론 반짝임의 뒤편에서 오래 숨 쉬고 있던 존재들을 조금 다른 각도로 바라본 기록들이다. 각 편마다 크리스마스를 지탱하던 사소한 사물들과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렸다. 이 시를 바라본 독자 분들의 익숙한 이번 계절이 조금은 다른 결로 다가오길 바란다.




연작시 소개



<산타의 선물> : 강요된 웃음의 주인공


이 연작을 구상할 때 처음 떠오른 건 산타였다. 많은 이들에게 산타는 ‘선물과 웃음의 상징’으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바라본 산타는 그 웃음 뒤편에 갇힌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 굴뚝을 내려오지 않는다. 모든 집들이 그를 끌어내린다. 웃음은 표정이 아니라 명령이며, 아이들이 기다리는 순간부터 그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가 쥔 초콜릿 상자 안에는 달콤함이 아니라 오래된 책임의 냄새가 배어 있다. 아이들은 기쁨을 받지만, 그는 매년 같은 자리에 묶여 내려와야 한다. 나에게 산타는 축제의 주인공이 아니라, 기쁨을 대신 떠안는 하나의 노동자이자 희생자였다. 웃음이란 얼마나 쉽게 명령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내가 이 시를 쓴 이유였다.




<멈출 수 없는 밤> : 질주하는 몸, 선택 없는 생(生)


루돌프는 오래도록 기적의 상징처럼 소비되어왔다. 하지만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달려야만 한다’는 점이다. 나는 루돌프를 상징이 아닌 하나의 몸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의 붉은 코는 불빛이 아니라 상처이고, 달리기란 축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조건이다. 그가 멈추는 순간, 그는 잊힌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달리고, 그 질주가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그의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를 보며 기적이라 부른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 기적의 한가운데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다. 나에게 루돌프는 화려한 서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움직임에 갇힌 존재’다. 축제란 그렇게 누군가의 달리기를 전제로 만들어진다.




<부러진 트리> : 허상의 중심에서 썩어가는 것


트리는 모든 축제의 중심에 놓인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웃으며, 트리 아래에 선물을 쌓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트리의 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화려함은 표면에만 머물러 있고, 그 내부는 조용히 갈라지고 썩어간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중심에 있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중심에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그 무게를 고스란히 지는 일이다. 가지에 매달린 장식과 불빛은 아름답지만, 그것들은 트리를 조용히 파괴한다. 나는 그 조용한 균열이야말로 축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가장 화려한 존재가, 실상은 가장 먼저 부서지는 자리라는 사실이 내게 오래 남았다.




<눈의 시체> : 선의의 끝에서 잊히는 존재


눈사람은 축제의 가장 순수한 상징 중 하나다. 아이들이 손으로 쌓고, 웃음을 붙이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는다. 따뜻함은 곧 녹음이고, 선의는 곧 소멸이다. 햇살이 이마에 닿는 순간 균열은 시작되고,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젖은 얼룩만 남는다. 누구도 그것이 시체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애초에 기억될 대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를 통해 선의라는 말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축제를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아름다운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그만큼 쉽게 잊힌다. 잊히는 것이 숙명이 된 존재들, 그들을 나는 눈사람의 몸에 담았다.






‘기적’의 이름 아래 존재하는 악몽


이 연작시는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주제는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단지 이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빌려온 하나의 무대, 익숙한 언어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축제의 이면이 아니라, 기적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비대칭이 존재하는가였다. 어떤 이들은 웃음을 강요받고, 어떤 이들은 달려야만 하며, 어떤 이들은 무게를 짊어진 채 서 있고, 어떤 이들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다. 이 구조는 계절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풍경이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는 주제는 바로 그 비대칭을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축제이자 기적인 일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반복되는 악몽이 된다. 산타의 웃음은 명령이고, 루돌프의 질주는 형벌이며, 트리의 화려함은 균열의 무게고, 눈사람의 순수함은 잊힘의 운명이다. 화려한 장식은 언제나 침묵 위에 세워진다. 모두가 박수를 칠 때, 무대 뒤편엔 말없이 버텨내는 얼굴이 있다.


나는 악몽이라는 단어를 공포의 이미지로 쓰지 않았다. 이 단어는 무대의 반대편에서 조용히 숨 쉬는 얼굴들을 가리킨다. 축제의 화려함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림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그림자를 기록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무대 위에서 웃고, 누군가는 무대 아래에서 버틴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그 버티는 이들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기적은 언제나 한쪽의 시선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시선의 바깥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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