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에 대한 단편
〈무종〉은 배수아의 단편소설집 『올빼미의 없음』에 수록된 여덟 편 가운데 하나다. 『올빼미의 없음』은 2010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집으로, 그 이전 소설집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단편 모음집이다. 이 책에는 [양의 첫눈], [올빼미], [북역], [올빼미의 없음], [무종] 등의 작품이 실려 있다. 특히 〈무종〉은 제34회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으로, 이 소설집 안에서 가장 강하게 “배수아적 실험”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올빼미의 없음』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기류다. 인물들은 늘 약간 비껴나 있고, 도시와 현실, 관계와 시간 속에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완전히 편안해하지 못한다. 그 불안과 어긋남이 때로는 몽환적인 이미지로, 때로는 건조한 일상 장면으로 형상화된다. 이 책은 배수아가 그간 쌓아온 문학적 성취를 응축해 보여주며, 한국문학 안에서 그가 어떤 방식으로 지평을 넓혀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 같은 단편집이다.
작품 스타일
배수아의 작품 스타일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우선 그는 서사보다 문장을 먼저 세운다. 플롯이 독자를 끌고 가기 전에, 문장이 먼저 독자의 시야를 점령한다. 빛, 물기, 냄새, 그림자 같은 것들이 문장 속에서 과하게 생생해져서, 때로는 이야기보다 문장 자체를 음미하게 된다.
그의 소설은 인과 관계로 단단히 엮인 이야기라기보다, 감정과 이미지가 느리게 부유하는 장면들의 연속에 가깝다. 그래서 읽으면서 이게 왜 이렇게 이어지는 건지 생각이 들지만, 책을 덮고 나서 되돌아보면 전반적인 기분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남는다.
배수아의 인물들은 언제나 약간은 세계에서 밀려나 있다. 그들은 이름조차 흐릿해 보이고, 어디에 속해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무명성과 어긋남이,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또, 그는 한국어를 굉장히 독특하게 사용한다. 전통적인 이야기 문장보다는, 번역문 같은 건조함과 시적인 기울기를 동시에 지닌 문장을 구사한다. 이 언어 감각이 서구문학의 영향과 한국적 정서를 기묘하게 교차시키며, 한국 문학 안의 이방인이라는 인상을 강화한다.
수록작 中 [무종] 감상
한 작가의 색깔이 갖는 힘
작가에게 고유한 색깔이 있다는 것은 때로 독자를 밀어내고 때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된다. 배수아의 소설은 바로 그 양극단을 모두 품고 있다. 익숙한 서사 구조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난해함으로, 그 문장과 분위기에 적응한 독자에게는 하나의 유혹으로 다가온다. 나 역시 배수아의 소설을 처음 읽을 땐 그 난해함이 ‘막연한 난해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여러 작품을 읽고 난 뒤에는 그 난해함이 단순히 복잡함이 아니라, 그녀 고유의 형식과 진술 방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색의 깊이, 고독의 이미지, 시간과 공간을 흩뜨렸다가 다시 모으는 감각에 익숙해질수록, 그 난해함은 오히려 문학적 쾌감으로 변했다. 이 작품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번 작품에서 나는 ‘배수아적 유혹’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서사보다 색채 이미지가 먼저 오는 문장들
이 작품은 사건 중심의 소설이 아니다. 묘사와 이미지가 먼저 흐르고, 그 뒤에 서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물웅덩이마다 하나의 밤 전체가 고여 있었다”와 같은 문장은 단순한 묘사라기보다 한 편의 회화처럼 느껴진다. 색채가 먼저 떠오르고, 그 다음에야 감정과 의미가 따라온다. 독자는 이 이미지적 문장들이 이어질 때마다 낯섦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낯섦은 거부감이 아니라 새로움을 만든다. 배수아의 소설이 기존의 문학적 기대치를 벗어나면서도 강한 흡입력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술 자체가 사건이고, 묘사 자체가 서사인 소설. 이 소설은 그런 배수아의 문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다.
에피소드의 느슨함, 그러나 전체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사건과 사건의 연결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는다. 에피소드 각각이 단단하게 묶여 있지는 않다. 대신 서술이 중심이 되며 이미지와 감각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 느슨함이 소설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배수아의 소설은 애초에 기승전결의 구조를 크게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그녀의 서사는 일종의 에세이적 흐름을 가지며, 인물의 경험과 이미지가 끊어지듯 이어지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정조를 만든다. 이야기가 구조적 연결보다 감각적 연속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느슨한 듯 보이지만 소설이 흩어져 보이지 않는다.
질문보다 느낌이 앞서는 작품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이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즉 주제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였다. 그러나 끝까지 읽은 뒤에 떠오른 결론은 다소 단순하다. 배수아의 소설은 반드시 한 가지 주제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감정과 이미지들이 조용히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독자의 마음에 파문처럼 남는 방식에 가깝다. 고독, 사색, 무명성, 시간의 비틀림들. 이 요소들은 하나의 의미로 압축되지 않고, 느껴지고 흩어지며 다시 떠다닌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을 ‘주제를 파악하는 소설’이 아니라, ‘정조를 체감하는 소설’로 받아들였다. 이것이 바로 배수아 문학의 정체성 중 하나다.
한국 문학의 이방인, 그러나 한국 문학의 중요한 축
배수아는 종종 한국 문학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형식, 문장, 감각 모두 전통적인 한국 소설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한국 문학의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며 스스로도 한국 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배수아는 한국 문학 안에서 이방인이 아니라, 한국 문학의 다양성을 확장시키는 존재다. 주류 문학이 하는 말과 다른 말을 하고, 다른 감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언어를 다르게 조직하는 작가. 그녀의 소설은 누군가에게는 난해하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분명 새로운 유혹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 유혹에 계속해서 끌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