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렇게까지 예민한 이유가 뭔가요?

사소한 장면이 문제로 불리는 순간들에 대하여

by 오로지오롯이


회의실 문을 열었을 때 테이블 위에 반쯤 식은 커피 컵 하나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자리를 떴던 모양이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컵을 들고 커피를 처리한 뒤 휴지통에 버렸다. 그걸로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회사 게시판에서 그 장면을 다시 보게 됐다. 누군가 찍어 올린 사진이었다.


“기본을 지켜주세요.”


그걸 보는 순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쓰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굳이 이 장면을 다시 꺼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컵을 두고 간 사람은 누구였을까. 일부러 그랬을까. 잠깐 전화를 받았을 수도 있고, 다른 회의에 불려 나갔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사진이 올라온 순간, 그런 사정들은 더 이상 고려되지 않는다. 남는 건 하나의 장면과, 그 장면을 문제로 만든 방식이다. 나는 그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예민해진 걸까.


예민하다는 말은 원래 조심하자는 뜻에 가까웠다. 말 한마디를 삼키고, 표정을 한 번 더 살피고, 괜히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그 감각이 꼭 필요하다. 말수가 갑자기 줄어든다거나,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거나, 같은 질문을 계속 피하는 모습 같은 것들 앞에서는 둔해지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런데 요즘은 그 감각이 다른 데서 더 자주 쓰인다. 조용히 치우면 끝날 일, 그냥 넘어가도 될 실수,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흔적 같은 것들이다. 말 한마디면 끝날 일을 사진으로 남기고, 사정을 묻기보다 장면을 먼저 꺼내 든다. 그 편이 빠르고, 덜 번거롭기 때문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는 명대사처럼 이런 예민함은 서로에게 소모적인 이슈를 만든다.


쓰레기를 치우는 데는 십 초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고, 사람들이 그걸 들여다보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든다. 그 사이 공간은 정리되지만, 분위기는 조금 달라진다. 사람들은 다음에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려 하기보다, 눈에 띄지 않으려 한다. 애초에 쓰레기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잠시 내려놓은 컵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래 방치된 흔적도 아니었다. 다만 사진이 올라오는 순간, 그것은 쓰레기가 되었고 커피 주인은 쓰레기 투척자가 되어 버렸다.


예민할 때와 아닌 때를 구분했으면 좋겠다.


아마 이런 반응들이 잦아진 건, 우리가 서로를 예전만큼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잘 모르는 사람의 사정을 짐작하는 것보다, 눈앞의 장면을 문제 삼는 쪽이 쉽다. 그쪽이 덜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공간은 규칙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실수할 수 있다는 전제, 한 번쯤은 넘어갈 수 있다는 여유 같은 것들이 있어야 숨을 쉰다. 모든 장면이 기록으로 남는 공간에서는 누구도 편하게 말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 둔감해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더 세심해져야 하고, 어떤 순간에는 그냥 지나쳐도 된다. 문제는 우리가 그 감각을 어디에 먼저 쓰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말 살펴야 할 디테일들은 대개 드러나지 않는 쪽에 있고, 문제로 만들기 쉬운 장면들은 늘 눈앞에 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어떤 장면들 앞에서만 마음이 바빠진다는 걸 느낀다. 말로 풀 수 있었던 일, 굳이 남기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이다.


그렇게까지 예민해져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할지도 모른다. 가장 쉽게 드러낼 수 있는 것에 먼저 반응하게 되는 습관. 그게 반복되다 보니, 우리가 정말 살펴야 할 디테일은 늘 한 박자 뒤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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