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전망대 투어 1편. 고성~철원 구간
DMZ 전망대에 오르면 예기치 않은 과거를 만난다. 끝없이 이어진 철책선과 이름 모를 나무들,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 모든 것이 반백 년 전의 그때에 멈춰져 있다. 망원경으로 둘러본 북녘 땅도 한 편의 무성영화처럼 고요하고 쓸쓸하다. 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흔적으로 남겼다.
이런 감정도 잠시. 우리는 비무장지대의 생동감에 놀라게 된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철새 떼들과 고라니의 힘찬 울음소리, 바람에 나풀거리는 광활한 숲의 장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 멀리 통일에 대한 희망이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DMZ 전망대엔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
안보와 희망의 정류장. DMZ 전망대를 둘러보다.
투어 첫날은 동해안 최북단 고성에서 시작했다. 고성은 안보 관광의 중심지로, 금강산 관광이 활발했을 때부터 남북교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가장 먼저 둘러볼 곳은 고성 통일전망대다.
고성 통일전망대는 남북 평화와 안녕을 바라는 염원을 담아 동해안 최북단인 민통선 내에 건립됐다. 금강산의 여러 봉우리와 해금강을 볼 수 있으며 민족 분단의 아픈 현실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다. 숨막히게 더운 여름날이라도 북녘까지 탁 트인 동해를 감상하다 보면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통일전망대에 방문했다면 DMZ박물관도 놓칠 수 없다. 독특하게도 민통선 안에 자리를 잡았는데, DMZ의 생태, 역사, 전쟁 유물 등을 꼼꼼히 전시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유엔군이 가족을 그리며 만든 스카프는 물론, 60여 년 전 철조망을 그대로 옮긴 철책 길도 조성돼 있다. 손수건이나 티셔츠 등을 제작할 수 있는 공예 체험은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인기다.
어스름이 깔리는 늦은 오후, 화진포에 도착했다. 화진포는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수려하게 늘어진 석호다.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여름철 방문하기에 최적인 해수욕장. 겨울에도 천연기념물인 고니 등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새하얀 고니 떼가 노니는 모습은 마치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해변 너머 위치한 ‘금구도’도 일년 내내 액자에 걸고 싶은 풍경을 자아낸다.
풍광이 뛰어난 곳에 자리잡은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과 이승만 별장, 세계적으로 희귀한 조개, 산호, 물고기 화석 등 1,500여 종 4만여 점을 전시한 화진포 해양박물관도 빠질 수 없는 관광지다.
첫날의 고단한 하루는 인제 평화생명동산에서 마무리했다. ‘생명의 열쇠로 평화의 문을 연다’는 슬로건에 걸맞게 DMZ 생태체험, 민통선 현장체험, 농촌체험 등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은 자연과 사람을 공경하고 물건을 아끼는 법을 배운다. 하룻밤만 지내보면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평화생명동산엔 건강과 입맛을 모두 찾을 수 있는 식단이 항상 마련돼 있다. 곰취, 명이, 아스파라거스 등 명품 산나물로 만든 음식이 자랑거리. 인제의 곰취와 명이는 다른 지역과 차별된 강한 향과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달달한 인제 막걸리를 겸하면 금상첨화다.
둘째 날이 밝았다. 아침 일정으로 양구 을지전망대를 방문했다. 구름이 많아 시야가 좋진 않았지만, 망원경을 이용해 북한군과 북한 군사시설을 또렷이 관찰할 수 있었다. 맑은 날엔 금강산의 비로봉, 월출봉, 차일봉, 일출봉 등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또 공산국가 최고지도자의 명칭을 고지에 붙여놓고 북한병사들의 결사 항전을 유도하는 ‘스탈린 고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시선을 돌려보면 또 다른 풍경에 넋을 놓게 된다. 해발 1,100m가 넘는 산등성이가 사방을 둘러싸고, 가운데에 타원형분지를 이룬 양구 펀치볼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6.25 격전지로 가슴 아픈 상처를 간직한 도솔산, 대우산 등 1000m 이상의 고산이 즐비한 양구의 남다른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을지전망대 인근엔 1990년 3월 2일.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제4땅굴이 있다. 땅굴은 군사 분계선에서 불과 1028m의 거리다. 내부엔 투명 유리로 덮인 20인승 전동차를 운행해 다른 땅굴에 비해 매우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다. 땅굴 발견 당시에 내부를 수색하던 중 지뢰를 밟고 산화한 군견의 희생을 기리는 충견비도 눈 여겨 볼 만하다.
차로 조금만 이동하면 광활한 크기인 평화의 댐에 도착한다. 평화의 댐은 북한이 착공한 금강산 댐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의 성금을 모아 만든 댐이다. 평화의댐에는 실제 전쟁에 쓰인 무기들의 쇠붙이를 모아 만든 ‘세계평화의 종’도 볼 수 있다. 이곳은 세계평화 염원과 분쟁 종식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여겨진다. 종을 친 후 손을 종에 갖다 대고 소원을 비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평화의종에서 소원을 빈 뒤 칠성전망대로 향했다. 이곳은 DMZ 내 전망대 중 가장 사진을 남기기 좋은 장소다. DMZ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과 깔끔한 안보전시관이 조성돼 있다. 포토존에서 DMZ를 바라보면 좌우로 시원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과거를 여행하듯 색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다.
칠성전망대엔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일반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군부대 매점, 일명 ‘PX’다. 군부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과는 DMZ 투어를 더 풍성하게 한다.
칠성전망대 인근엔 생창리 DMZ생태평화공원이 있다. 군 부대를 지나쳐 민통선 깊숙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데, 휴전 후 지난 60년 간 민간인에게 전혀 개방되지 않았던 곳이다. 지금은 방문객들이 원시 생태계를 직접 탐방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전쟁, 평화, 생태가 공존하는 DMZ의 상징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이 공원 안의 용양보는 마치 접경 지역에 숨겨둔 ‘비밀의 정원’ 같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금강산 전철 교각을 사용해 만든 농업용 저수지인데, 왕버들 군락이 분포하는 아름다운 습지를 볼 수 있다. 세월을 품고 간신히 연결돼 있는 출렁다리엔 계절별로 가마우지, 두루미, 고니 등의 철새들이 다녀간다. 용양보는 하루를 비워 놓고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셋째 날 아침, 고성부터 시작한 투어도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마침 방문했던 철원 승리전망대가 휴전선 155마일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은 북한 쪽 관측이 가장 잘 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북한군의 이동 모습은 물론 경원선 철도, 아침리 마을 등 남북 분단의 현장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연이어 방문한 고석정은 현무암 협곡이 만들어낸 한탄강 최고의 절경이었다.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이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다 전해지는 곳. 강 가운데 우뚝 선 높이 10여 m 바위와 소나무 군락, 주변의 현무암 계곡이 어울려 독특한 풍광을 이룬다.
고석정 주변에선 각종 항공기 등 군사 장비들이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유가 있다면 ‘철의삼각전적관’을 둘러봐도 좋다. 남북한의 생활상을 비교할 수 있는 다양한 물품 등 볼거리가 많다. 고석정을 방문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주변에 있는 매운탕 집들이 바로 그곳이다. 칼칼한 매운탕 맛이 일품이라는 평이 있다.
도착 전부터 설렜던 곳, 철원 평화전망대다. 도보로도 오를 수 있지만 멋스런 모노레일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의 랜드마크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로 오르면 창 밖으로 보이는 곡선의 철책에 울창한 숲이 더해져 몽환적인 느낌마저 든다. 모노레일은 성인 기준으로 1인당 2000원이며, 30분에 한 번씩 운행한다.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철원 평화전망대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인근의 철의삼각 전망대 앞으로 나무가 우거지면서 제 기능을 잃어 2007년에 평화전망대가 새로 준공됐다. 군 막사와 검문소를 재현한 전시물이 유명하며 전망대 내부에선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평강고원, 북한 선전 마을을 전망할 수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그 유명한 팻말을 기억하시는지. 서울에서 원산까지 달리던 ‘철마’는 월정리역에 멈춰 있다. 현재는 폐역 상태로, 6·25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 잔해 일부분과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숴진 인민군의 화물열차 골격이 보존돼 있다.
월정리역 앞으로 타박타박 걸어나오면 철원두루미관이 보인다. 이곳은 폐쇄됐던 구월정역 전망대의 2층과 3층을 재단장해 만들어졌다. 자연과 철새관은 철원이 철새도래지가 된 배경과 철새에 대해 소개하고 있으며, 두루미관에 전시된 조류와 동물 박제들은 약 38종 90여 점에 이른다. 이곳에 방문해 무거운 역사 관광지에서 잠시 벗어나 이채로운 철새 사진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켜도 좋다.
백마고지 위령비에 방문하기 전엔 ‘백마고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백마고지’는 심한 폭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이라 해 붙여진 이름이다. 6.25전쟁 당시 중동군과 국군이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 알게 해준다. 이곳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북서쪽 약 12㎞ 지점, 해발 395m 고지에 위치해 있다.
백마고지 위령비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과 중공군의 영혼을 위로하는 자리다. 밝게 웃던 아이들도 이곳의 분위기를 알았는지 금방 차분해진다. 사람들은 위령비에 올라서기 전 담당 군인의 안내에 따라 묵념을 갖는다. 경험하지 못한 역사지만, 피로 희생된 전투를 떠올리다 보면 무거운 감정들이 압도적으로 어깨에 내려앉는다.
셋째 날의 마지막 코스는 소이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눈이 정화되는 것 같은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다. 소이산은 철원 평화누리길의 주요 코스이기도 하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천천히 걸으며 여정 자체를 즐기는 시간.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며 자신을 돌아보기에 좋다. 날씨가 좋은 날엔 철원의 주요 고지도 볼 수 있다.
소이산 정상에선 철원의 대표적인 안보 관광지인 노동당사도 목격된다. 노동당사는 해방 후 북한이 공산독재 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6.25이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 고문과 학살을 자행하며 악명을 떨치던 곳으로 한국 역사의 아픈 단면이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받아 지금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