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알프스로 불리는 바람의 언덕에서 일출 감상까지
첫눈 예보가 들려오는 날이면, 문득 떠오르는 곳이 있다. 끝없이 이어진 능선 위로 바람이 흩날리고, 구름이 낮게 깔리면 금세라도 하얀 눈이 내려앉을 듯한 곳, 삼양목장이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그곳의 겨울은 이미 준비를 마친 듯하다. 차가운 바람이 들판을 스치고, 고요한 목책로 위로는 희미한 서리의 숨결이 깃든다. 양떼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풍경 속에서 나는 곧 눈으로 덮일 대지를 미리 그려본다. 한 겹의 흰빛이 세상을 감쌀 때, 삼양목장은 다른 행성처럼 고요하고 순수한 세계로 변한다. 이제 곧 그 설원의 계절이 온다. 첫눈이 내리는 날, 그 길 위에서 마주할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1972년 동양 최대 초지목장으로 탄생한 삼양목장은 아름다운 경관으로 이름 났다. 특히 겨울엔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감상할 수 있어 사시사철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농부와 함께하는 생태 체험 관광뿐 아니라 가공을 최소화한 자연 먹거리도 풍부해 가족 단위 체험객에게 인기다.
이 지역은 원래 궁벽한 산골이었지만, 목장이 설립된 뒤 관광객들의 눈을 맑게 해주는 힐링 명소로 거듭났다. 특히 정상에 위치한 동해전망대에선 목장 전경과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기상 여건이 좋을 땐 강릉 시내와 주문진 인근 바다 감상도 가능하다. 인근 백두대간 능선으로 종주산행이 이뤄지며, 시베리아 설원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장면을 눈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매년 1월 1일에 개최되는 해돋이 행사에선 장엄한 일출을 감상하며 대자연과 하나되는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목책로를 이용해 걷기 여행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동해전망대부터 광장까지 약 4.5km로 도보 1시간 정도면 충분해 부담이 없다. 걷기 도중 양 먹이주기 체험을 즐길 수 있으며, 타조 방목지에서 안락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 바람우체통을 이용해 이곳에서 느낀 감동과 소중한 추억을 엽서에 담으면 행복 가득한 편지가 배달된다.
무엇보다 구름 아래 드넓게 펼쳐진 들판을 걷다 보면 그 경관에 매료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풍광이 뛰어나 도깨비와 용팔이, 육룡이 나르샤, 베토벤바이러스 등 유명 드라마 촬영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삼양목장길은 심신이 지친 사람들에게 백두대간의 정기를 몸 속 가득히 심어준다. 동장군의 칼날 같은 바람이 여전하지만 마음속에선 봄이 싹트고 있을 사람들에게 멋진 새 출발을 기원해준다. 새하얀 눈길을 걸어보며 동계 올림픽의 낭만을 미리 느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대관령 삼양목장은 오전 8시 30분에 개장해 오후 4시에(동계 기준) 매표를 마감하니 방문 시 참고하자.
아직 첫눈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 목장에도 하얀 눈이 내릴 것이다. 그때면 언덕마다 흰빛이 번지고, 나무와 울타리, 바람까지도 겨울의 색으로 물들 것이다.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이런 풍경을 떠올리면 마음이 괜히 잔잔해진다. 삼양목장은 늘 같은 자리에서 계절을 맞이한다. 봄에는 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물러나면 눈이 내려 초원이 설원으로 바뀐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한 해를 살아내는 일과도 닮아 있다.
첫눈이 내리면 다시 그 길을 걷고 싶다.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천천히 걷다 보면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이상하게 따뜻한 기운이 느껴질 것이다. 그것이 이곳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바쁜 일상에 묻혀 잊고 지낸 마음의 온기를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곳, 그래서 삼양목장은 겨울마다 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