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여행 중 만난 크리에이티브
일본 여행은 늘 ‘디테일’에서 시작된다. 화려한 건축물이나 유명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 녹아든 작고 사소한 것들이 눈길을 붙든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순간들에 집중해보았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장면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감각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나는 매일의 산책 속에서 새삼 느꼈다.
올해 초 도쿄 여행 중에 게스트하우스에 묵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사용했던 변기다. 일반 변기와는 뭔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수도꼭지가 있다는 점이다. 수도꼭지가 세면대가 아닌 변기통 위에 붙어 있는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결국 이 변기가 물 절약을 위한 제품임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이것은 용변을 보고 난 후 물을 내리면, 변기 상단에 부착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로 손을 씻는 원리이다. 또한 손을 씻는 데에 사용된 물은 다시 저장탱크로 들어가 변기의 다음 동작에 사용된다. 이 제품이 있다면 물 절약은 기본이고, 따로 세면대를 제작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되면 공간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도쿄에서 사는 친구의 집에 있던 형광등이다. 사진만 보게 되면 일반적인 집들의 형광등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불을 끄게 되면 이 형광등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바로 형광등에 있는 야광 소재 때문인데, 불을 끄더라도 5~10분 가량 빛이 지속된다. 보통 불을 끄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 갑자기 생각난 것, 예를 들면 화장실을 간다든지, 휴대전화를 잠자리로 가져온다든지 해서 불을 다시 켜는 경우가 많은데, 이 형광등 아래에선 다시 불을 켜기 위해 노력할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물론 대단한 에너지 절약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은은하게 사라져가는 빛 아래서 잠들기 위한 준비를 하다보면, 이 아이디어가 소소하기는 하지만 사람을 배려해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요즘 기관사들의 안전 불감증이 뉴스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대부분 자동으로 맞춰진 최신식의 전동차가 지하선로를 달리다보니 예전만큼 기관사들이 하는 일이 매사에 집중을 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한국에서는 기관사의 졸음운전이나 스크린도어 조작 부주의로 사고가 나곤 했었다. 일본도 그러한 경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지하철에서는 전동차의 기관사 칸이 승객들에게 개방이 되어 있었다.
한국 지하철은 승객들이 기관사와 불투명한 벽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데, 그것과는 달라 눈길이 갔다.(물론 신설 철도는 개방된 부분이 더러 보이긴 한다.) 이렇게 기관사 칸을 개방하여 기관사의 모습을 보면 더 안정된 마음으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고, 사고가 나더라도 더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관사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으나 승객들을 먼저 배려하려는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이 건물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이다. 이 건물의 특징은 나선형으로 설계한 독특한 내부 구조인데,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승강기 이용 없이 일층부터 계속 걷기만 해도 최고층에 다다를 수 있게 건축이 연출되어 있다.
이는 명품 숍과 갤러리, 레스토랑 등을 이용하려는 고객들이 연속적으로 매장에 접근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는 매장의 수익과 고객의 편리성을 모두 보장해준다. 또한 나선형이 가지는 대각선의 선과 자연 채광의 조화가 미학적으로도 모두를 만족시키고 있다. 간단한 생각의 전환으로 계단을 이용하여 위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편견을 깬 크리에이티브한 건축물이라 판단된다.
이번 일본 여행을 통해 나는 '창의성'이란 거창한 발명이 아니라, 삶의 결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불편함을 줄이고, 사람을 배려하고자 하는 작은 시도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느꼈다.
변기 위의 수도꼭지, 은은하게 사라지는 형광등, 개방된 전동차의 기관실, 계단 없이 걷는 건축 동선까지—
그 모든 것들은 "이걸 왜 이렇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고, 곧 "이래서 참 좋다"는 감탄으로 이어졌다.
이 작은 크리에이티브들은 결국 '사용자'라는 사람을 향해 있다. 효율성과 아름다움을 모두 포기하지 않는 태도, 당연하게 여긴 것을 다시 설계하려는 집요한 시선, 그리고 그 끝에 있는 '일상의 감동'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앞으로 나도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사물들을 다시 보는 연습을 하려 한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익숙한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 그런 시도들이 모여,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나아지게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