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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던 신호

'지금이야, 네 삶을 돌아볼 타이밍'

by 오로라

아마 38~39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연히 한번 밖을 거닐었을 뿐인데 내 뇌가 내 몸이 그것을 기억했다.


회사, 집.

회사, 학원, 집.

회사, 회식, 집.

회사, 집, 알바.


21살 때부터 나의 일과다. 연애도 하지 않았다. 남자도 싫었다. 일을 잘 해내고 싶었고 내 연봉을 계속 올리고 싶었다. 너무도 웃긴 건 내가 열심히 목적으로 삼았던 연봉 올리기의 결과, 20년 동안 애쓴 결과가 21살 받았던 기본급에서 200만 원이 더 될까 말까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대표의 가족인데도 나보고 그렇게 열심히 일해주지 말라고 안타깝다고 할 정도로 진짜 열심히 내 일처럼 일했는데 그렇게 학원까지 과외까지 받아가며 열심히 실력을 쌓아온 20년의 결과가 200만 원이 될까 말까라니 실소를 터트렸다.


이직을 하면 나아지겠지. 연봉을 올리면 나아지겠지. 내가 일을 더 잘하면 나아지겠지. 무엇이 나아지고 싶었던 건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경주마처럼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부하가 걸렸었나 보다. 그냥 모든 게 무의미했다. 달리다 넘어지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나보다 더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근데 이상하게 주위를 둘러보니 나보다 돈을 더 많이 가져가는 이들이 보였다.


일은 적게 하는데 연봉은 나보다 많다?


처음엔 그들이 그래도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 하나의 큰 장점을 가진 줄 알았다.

그게 아니란 걸 알았을 땐 그냥 애써 무시했다. 그는 그고 나는 내가 원하는 월급만 받으면 되는지 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계속 빚이 늘어났다. 아무리 일해도 월급은 오르지 않고 나갈 돈은 더 많아졌다. 아이러니했다.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이상했다.



회사에서 나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전 같으면 이 플랜을 위해 열심히 달렸는데 조금씩 고삐를 늦췄다. 잠시 옆을 쳐다보니 대표도 주위직원들도 그러기를 원했다. 설렁설렁하자면서 매출은 매번 전년, 전달, 전주와 비교했다. 고삐를 조금씩 조금씩 늦추다 보니 일하기 싫어졌다. 그래도 십여년 습관이 있어 또 달리다 고삐를 늦추다를 반복했다.


하루는 속이 답답해 점심을 빨리 먹고 주위를 걸었다. 30분 정도 걷고 오니 기분이 좋았다. 그게 아마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직을 하면서 회사 근처에 숲이나 공원이 있으면 그쪽으로 향했고 없으면 골목골목을 누볐다. 처음엔 가끔씩점심을 일찍 먹고 걸었는데 어느 순간 오후 시간에 한번 추가되더니 너무 답답한 날엔 오전에도 5~10분 정도 거닐다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들어가기 싫을 때가 점점 늘어갔다.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마 그때부터 내 안에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내주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네 삶을 돌아볼 타이밍.'


내 뇌가, 내 몸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계속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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