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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Jul 08. 2022

곧 끊어질 '취업'이라는 동아줄'

앞으로 5년은 더 잡고 있을 줄 알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 하는 걸 좋아한다. 천성이 그러한 것 같다.

어릴 때 어른들이 무얼 하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오롯이 그것만 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아노를 배울 때에도 선생님이 1~20번까지 숫자를 써주시고 한번 칠 때 한 개씩 동그라미 표시를 하라고 하면 꼭 그대로 한 번에 하나씩 그렸다고 한다.


퍼즐도 처음 시작할 땐 언제 다 맞추나 답답한 마음이 조금 들 때가 있지만 하다 보면 끝이 올 거라는 확신이 있어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심호흡을 하고 가만히 앉아서 하나하나 조각을 맞춘다. 아이를 가졌을 때도 캔버스 색칠하는 것도 해보고 아이용품 손바느질하는 것들도 해보았는데 1000ps 백호(호랑이) 퍼즐을 맞췄던 게 가장 많이 생각난다. 백호의 털도 다 비슷하고 주위 배경은 산과 숲이어서 경계가 모호했다. 일단 제일 가장자리 퍼즐 모양을 모아서 귀퉁이부터 붙여간다. 그리고 백호 털 느낌이 나는 퍼즐과 숲 쪽 컬러 퍼즐 하늘 컬러 퍼즐을 대강 나누어 놓고 이리저리 대보면서 맞춰간다. 박스 겉면에 전체 그림을 참고하며 계속 맞추다 뱃속에 아이가 발로 차면 정신 차리고 쉬었던 기억이 있다.


한번 또 한 번, 하기 싫거나 힘든 일 또는 지금 시작해서 언제 끝나 하는 일들도 하나하나 시작해서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끝난다. 몸으로 머리로 알고 있다. 회사 프로젝트를 할 때 어려워 보이는 일도 하나하나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정리하다 보면 해결이 됐다. 그래서 차분하게 일을 잘한다, 믿는다, 능력이 좋다는 말을 꽤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남들보다 꽤 길게... 아닌 줄 알았던 곳에서 오래 일했던 걸까?





끝까지 잡아야만 했던 '취업 동아줄'



예전에 온라인 쇼핑몰 관리직이 너무 싫어 홈쇼핑, 학습지 콜센터에 근무를 해본 적이 있다. 온라인 쇼핑몰 관리직이 말이 좋아 관리지 누수 나는 업무들은 직접 처리해야 했다. 당연히 고객 상담이나 상품 관련 안내는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았다. 오전에는 내 일(자영업)을 하고 오후에 콜센터에서 일을 하겠다는 야심 찬 마음을 먹고 뭐 내 사업 안되면 콜센터에서 50~60대까지 하지라며 쉽게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


컴퓨터 활용능력도 떨어지지 않겠다, 자신이 있었다. 콜센터에서 일주일 교육을 받고 팀 배치를 받았다. 팀마다 팀장, 부팀장 급의 리더들이 있었다. 흠, 나도 금방 저 자리에 앉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집에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 부팀장 정도는 금방 하겠다고 얘기해뒀다. 월급은 많이 적었지만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막상 시작해 보니 저녁 5시부터 8시간 풀 근무를 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저녁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근무하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씻으면 새벽 2시. 잠이 많은 편인 나는 낮 11시쯤이 돼야 눈이 떠졌다.


씻고 점심을 먹고 잠깐 볼일을 보면 4시쯤 집을 나선다. 도통 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중간중간 짬짬이 어린이집 선생님, 학습지 선생님과 통화도 해야 하고 집에 필요한 생필품들도 준비해야 하고 식구들 필요한 건 또 없는지 체크하고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콜을 받다가 어린이 집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조금 오래 통화하게 됐다. 콜센터는 자리를 이탈 시 내 컴퓨터에 휴식을 찍어놓고 나가야 하는데 리더들의 컴퓨터에는 맡은 조원들의 콜 상황이 표시되어 화장실 다녀올 정도의 시간을 지나가면 한 소리를 들었다.


옆에서 가만히 보니 팀장, 부팀장의 업무들이 가관이 아니었다. 인콜, 아웃콜, 팀원 감독, 성과율 체크, 중간에 팀별 연락, 팀원들의 콜 관련 문의 처리, 문제가 된 콜 청취 후 처리................. 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주문이 폭주하면 폭주하는 만큼 모두의 일이 쌓여갔다. 일도 많은데 사람 상대하는 콜 관련 일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여기나 저기나 이 업무 저 업무 다하는 건 똑같았다. 신생 업무 및 팀을 만든다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니 자리가 잡히지 않은 프로젝트라 또 누군가가 하던 일 + 신규 업무를 나눠 맡아야 했다. 팀장급 급여는 얼마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받는 기본급에서 올라갔을 거니까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다. 콜센터라고 가볍게 볼게 아니었다. 외워야 하는 업무 프로세스나 내용들이 얼마나 많은지 끝이 없었다. 학습지나 홈쇼핑이나 상품들이 계속 업데이트되거나 신상품이 나오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제품에 대비를 해야 했다. 용산에서 컴퓨터 판매업을 하던 어떤분은 부업삼아 콜센터에 왔는데 콜 1등해서 인티를 받았는데 목에서 피가 나오더라 했다. 한달쯤 됐을 때 화장실도 맘 놓고 못 가고 온갖 말도 안 되는 cs를 받으며 이 월급을 받느니 오히려 중소업체에서 하던 일 하는 게 훨씬 낫겠다 싶었다. 대체 어느 누가 콜센터 페이를 이따위로 책정했나 의문이 들었다.


파트 타임의 다른 부업 등을 하면서 내 일을 해보려 했으나 어쨌든 돈을 벌러 나가면 그 시간이 거의 하루의 반이었다. 아이 등 하원은 친정엄마에게 맡겨두어 그나마 편한 상황이었는데도 업무를 끝내고 집에 가서 아이를 씻기고 같이 얘기해주고 저녁 먹거나 tv라도 보면 시간이 다 갔다. 20대엔 투잡 쓰리잡도 했었는데 이젠 몸도 늙고 마음도 늙었는지 벅찼다.


20대 때는 동생과 여성의류를 인터넷에 팔아본 적이 있었다. 둘이 스튜디오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옷 사이즈를 동생이 재주면 사진 편집, 등록, 판매 처리는 내가 맡았다. 서로 회사를 다니면서 해보려던 거라 회사를 다녀와서 집에서 작업을 하려니 녹초가 돼서 작업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동생은 제품이 언제 올라가냐고 계속 물었다. 판매 가격을 정할 때에도 둘이 생각이 달랐다. 동생은 마진이 없어도 싸게 올려야 한다고 했고 나는 몇천 원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 판매는 됐다. 띄엄띄엄 주문이 들어왔다. 하지만 결국은 흐지부지.


아이를 낳고 난 뒤에 혼자 도매 어플로 제품을 사입해서 혼자 거울 샷으로 사진을 찍고 옷을 올려 팔아보기도 했다. 그것도 역시 투잡. 오전에 사입한 옷을 정리하면서 사이즈도 측정한다. 스팀 한 옷들을 혼자 입고 촬영을 한다. 촬영한 제품들을 정리하고 편집해서 판매를 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 건을 포장해서 발송한다. 혼자서 다 할 줄 아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예전의 내 몸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너~무 힘들었다. 기력이 없었다. 예전엔 이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지쳤다. 거기다 딱히 모아둔 돈은 없고 월급도 줄은 마당에 매번 현금으로 제품을 사입하니 판매가 돼도 불안함만 쌓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판매가 안된 것도 아니었고 어떻게든 빚이라도 내서 버텼으면 자리라도 잡혔을 텐데 월급도 잡고 싶고  사업도 하고 싶고 준비없이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욕심이 했던게 아닐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쨌든 결국 나는

내가 잡은 취업이라는 동아줄이 곧 끊어질 줄인 걸 알면서도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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