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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Jul 11. 2022

오래 다니고 싶어 이어폰을 꼈습니다만,

귀가 나갔습니다.

몇 번 방황의 시간(타업종, 부업 등등)을 뒤로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돌아간 회사에서는 전체 팀장은 맡지 않기로 했다. 명확한 포지션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 위주의 업무를 맡았다. 자사몰 관리(매출+홍보+디자인, 등록 및 제품 관리)라던가 엠디 및 일부 디자인이라던가. 온라인 팀장은 맡지 않는 조건으로 찾아다녔다. 내 위에 온라인 쪽 총괄이 있다고 하면 더 좋아했다. 총괄이 일을 못해도 억지만 부리지 않는다면 누구든 상관없었다. 일을 지시하더라도 이야기가 통해서 조율이 되거나 하면 문제없었다. 보통은 대표하고 업무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누가 무슨 지시를 내리던 그냥 이해하려 노력했고, 웬만하면 내 생각을 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그냥 그들의 방법으로 한번 해본 뒤에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내 의견대로 진행하는 편이 마음이 더 편했다. 이것도 어쩜 사는 노하우라고 해야 하나? 




이해가 안 된다는 말



예전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이해 안 될 때가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 직원들은 옆에 앉아 있어도 메신저로 이야기하는 게 흔하긴 하지만 메신저로 오래 쳐야 하는 거면 'OO 씨' 하고 불렀는데, 부르면 소리를 못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으며 일하는 게 더 집중이 잘 된다고 했다. 끼인 세대라 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 뭐라 말하진 않았다. 대표나 본부장급들을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지만 업무에 지장을 주는 일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시라 말씀드린 적도 있었다.  


나도 내가 듣고 싶은 게 있었지만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표나 윗선급이 부르면 언제든 바로바로 반응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 회사의 과장과 사원이 나와 MZ세대의 업무에 대한 생각이나 의견을 나누는 걸 본 적이 있다. 과장은 나랑 비슷한 또래였고 사원은 입사 1년이 안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번 그 팀 팀장이 김밥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과장이 곧바로 김밥을 사 오는 걸 보고 그 신입 사원이 이해가 안 됐었다는 얘길 했다.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건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업무에 관련된 것도 아닌 개인용무를 왜 들어주냐는 거였다. 그 이야길 듣던 과장이 이런 말을 했다. 팀장이 누구 한 명 김밥을 사 오라고 했는데 밑에 얘기하면 또 이렇다 저렇다 말이 나올 것 같아서 그냥 본인이 빨리 나가서 사 왔다고. 


상사의 눈치를 보던 거의 끝 세대라고 해야 할까? 너무 공감이 갔다. 위에는 위대로. 아래는 아래대로 눈치를 봐야 하는 세대. 그런 걸로 분위기 안 좋아져서 업무에 지장을 줄 거면 그냥 내가 한다. 내가 해. 대표는 대표대로 직원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고,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회사가 대표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예전엔 양쪽으로 왜 그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지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양쪽을 붙들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는데 그렇게 해도 결국은 바이 바이. 다 자기들 살길 찾아 떠나는 사회에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오히려 그러느라 내가 진이 빠져 오래 근무할 수 없었다. 




일부러 이어폰을 낍니다.


어느 순간 이직 후 나의 목표는 '회사 오래 다니기'. 그래서 나도 마음을 다잡고 그래, 오래 다녀보자. 노력해보자 했다. 


나이가 드니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내 업무만 해도 회사가 또 다른 부서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이 된다. 이 사람 저 사람 삼삼오오 모여서 사무실 내에서 얘기하거나 외부 요청 건으로 실랑이를 하거나 오만가지 소리들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온다. 들려도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기 힘든 사회 초년생이 아니고서야 이런저런 소리를 듣게 되면 당장 내 업무 하고도 어떻게 될지 미리 예상을 하게 되거나 전체적으로 이런 문제들이 또 다른 부서에도 일어나고 있구나 생각하면 전혀 개선되지 않겠구나 하면서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또 이쪽저쪽 이야기를 잘 들어주다 보면 많은 직원들이 나를 찾게 된다. 어떻게 하냐, 건의해줄 수 없냐, 만들어 줄 수 없냐, 어이가 없지 않냐....... 팀장이라는 총대를 메던 안 매던 결국은 똑같은 결론.


그래서 어느 날부턴가 이어폰을 끼기 시작했다. 양쪽 다 막을 순 없으니까 번갈아 가며 한쪽씩. 오른쪽 꼈다가 좀 힘들면 왼쪽으로. 강의도 듣고 유튜브도 듣고 음악도 듣고 라디오, 팟캐스트. 들을 수 있는 거라면 아니, 외부의 소리를 차단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으니 와서 얘기하는 사람도 좀 줄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는 자체에 말을 아끼는 사람도 있고 내가 한 번에 반응을 못하니 말을 아끼는 사람도 생겼다. 주위에서 삼삼오오 얘기하던 소리들도 들리지 않고, 뒤에서 누군가 스트레스로 키보드를 부수는 듯한 소리를 내도 신경이 덜 쓰였다. 


그래 그럭저럭 다닐만했다. 내 일만 집중해서 하면 됐다.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업무였지만 더한 곳도 있었던 터라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두 달 만에 퇴사하고도 남았을 그 회사를 7개월이나 다니며 여태 제대로 세팅도 못하던 온라인을 구축하고 0원에서 몇천만 원대로 매월 매출을 갱신했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이어폰을 끼면 아픈 내 귀와 충전을 해도 금방 닳아버리는 에어 팟을 보면서 영원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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