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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Aug 02. 2022

지금 적는 이력서 한 줄이 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이제 보니 그렇더라.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을 당시만 해도 이런 글을 쓰고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처음엔 회사생활을 접고 홀로서기하는 모습을 하루하루 기록하며 훗날 내 발자취를 한번 돌아보자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한 승인은 생각보다 까다로웠고 글의 소재를 고르려다 보니 성인이었던 내 인생 전부인 직장생활에 대해 쓸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나에 대해 알아가면서 내 발목에 쇠사슬을 건 것은 나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여태 남 탓을 했던 '그것'의 원인이 결국 나였다는 것을 말이다. 




 이력이 쌓여간다.


좋았다. 회사를 옮길수록, 한 해 한 해 일한 년수가 쌓일수록 할 줄 아는 게 점점 늘어갔다. 자랑까진 아니지만 '훗, 나야' 정도 약간의 자신만만함도 생겼다. 내 업무에 관한 한 어떤 이야기도 자신이 있었다. 설사 내가 직접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어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알고 있었다. 애쓴 만큼 차곡차곡 매출도 오르니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입사한 회사들은 항상 체계가 없었다. 딱 한 군데 그나마 내 기준에 체계가 좀 잡혔다고 생각했던 업체가 있는데 그 외엔 전부 나에게 매출 향상과 함께 온라인팀 정상화를 요청했다. 팀을 흔들리지 않게 정상적으로 만들면서 매출을 잡아야 하니 더 힘이 들었지만 어쨌든 인정을 받을 정도로는 잘 다듬어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것저것 다 하라고 하는 거지? 왜 나는 한 가지에 깊이가 없고 정신없이 이일 저일 하고 있거지? 이러니까 일하는 게 더 힘든 거 아냐?' 

회사에서 이일 저일 그 일까지 여러 가지 다양한 걸 원하니 탈이 났다. 역류성 식도염은 기본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몸도 전과 같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도 너무 피폐했다. 집은 집대로 신경 써야 하는데 회사일에 90%의 신경을 쓰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할 줄 아는 게 많아지고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는데 몸은 계속 고달팠다. 다양한 요청에 남들은 대놓고 못한다고 표현도 잘하던데 또 그런 성격이 못 됐다.  





 이력과 연봉이 꼭 비례하진 않는다.


할 줄 아는 게 많아졌다고 연봉이 꼭 비례하진 않았다. 매출이 얼마가 오르던 돌아오는 대답은 이 회사나 저 회사나 같았다. 매출은 올랐지만 아직 전과같이 회복이 안됐거나 다른 사업 때문에 아직 힘들거나.... 언젠가 인센티브를 꼭 챙겨주겠다 얘기해주면 그나마도 '고맙네'라고 생각했다. 내 연봉은 항상 처음 받았던 연봉에서 1년이 지나면 예의상 인상하는 그런 수준이었다. 어릴 때엔 내가 성과를 얼마나 냈는지 얘기하고 연봉협상하던 나였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가니 지쳤다. '그래, 서로서로 좋아야지. 힘들다는데 어쩌겠어.' 내가 그 대표의 가족도, 친인척도 뭐도 아닌데도 업체를 끌어가는 대표는 오죽 힘들겠냐 생각했다. 


그러다 모든 것에 지쳐 팀장 포지션을 놓고 이직을 한 후 내 위에 상사가 생기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내가 같이 일한 상사 중 온라인 쇼핑몰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거나 실무를 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떤 이는 심지어 회사에서 일을 전혀 안 했다. 적절히 대표의 물음에 상대하고 적절히 직원 비위만 맞춰줬다. 또 어떤 이는 연봉이 1억이 넘는데도 고사하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 자리가 공석이면 일이 더 빨리 진행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은 내가 온라인팀 팀장으로 있을 때 보다도 연봉이 높았고, 회사 지원 차량이나 유류비 같은 지원도 받고 있었다. 


우스웠다. 일은 내가 다 꾸려가는 것 같은데, 아니 소위 일은 내가 다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알아주는 회사 경력도 있고 뭐 영업, 소싱이라도 잘하나 보지. 뭐 한방이 있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그 '한방'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심지어 유명한 00 회사에서 일했고 연봉이 1억 이상인 사람이 실무를 전혀 하지 못하더라 하소연하며 그런 사람보다 나를 채용하겠다는 한 업체 대표를 만나면서  '응? 연봉 1 억대 신 내가 필요하다고? 근데 왜 내 연봉은 그 반절도 안되지?'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우습게도 내가 만든 나의 족쇄

한동안 많이 혼란스러웠지만 한편으로 그에 순응했다. '한방은 없어도, 나랑 뭐가 다른가 보지. 내가 이름난 회사를 못 다닌 게 죄지. 대학을 휴학한 게 문제인가 보지.' 다양한 것들을 끄집어내어 나를 낮추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일을 못해서 맨날 뒤에서 수군거리면서도 "00 회사에서 00 직급으로 있었다며 그거 하나로 왔나 보지."라고.


나이가 들고 이직을 하면서 점점 뭔가 이상했다. 팀장도 맡지 않았고, 받는 월급도 적은데, 어느 순간 내가 팀장 역할에 타 부서의 요청 건까지 해서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늘고 있었다. 어느 날은 내가 다루지 못하는 프로그램을 유튜버를 검색해가면서 배워가며 일처리 하는 내 모습에 현타가 왔다. 이러려고 내가 지금 여기 앉아있는 게 아닌데..... 


이력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내 이력서지만 화려했다. 다양한 프로그램 활용능력, 팀장으로서 맡아 진행했던 수많은 일들, 직접 진행할 수 있는 A부터 Z까지의 실무경험. 순간 아찔했다. '아.......... 이걸 보고 나를 채용한 거구나.' 이 이력서를 중소기업 대표가 봤을 때 어떤 느낌일까?


안 그래도 한 명이 여러 가지를 해줘야 하는 중소업체. 직원들 중에 모든 걸 아울러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고심하던 대표가 내 이력서를 보고 면접을 보자고 한다. 불러서 얘기해보니 역시나 업무 전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지금은 00포 지션만 얘기한다. 본인도 사업하며 직원을 채용해본 짬이 있으니까. 그럼 나는 좋다고 수락한다. 물론 일부 포지션이니까 연봉도 낮춰 부른다. 그럼 대표는 속으로 '나야 좋지. 이것저것 할 줄 알고 아는 것도 많은 것 같은데 연봉도 딱 내가 줄만한 정도네?'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 이해가 된다.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나의 이력이라고 써놨던 그 모든 것들이 우습게도 결국 내 발목을 잡는 게 되어버렸다. 


몇 년 동안 봤던 팀장급들처럼 일에 100% 목숨 걸지 말고 할 수 있는 성격을 만들던가 내가 좀 더 내 경력의 깊이를 만들 수 있는 포지션, 방향으로 일을 하던가 했어야 했는데 많이 알고,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으면 좋은 줄 착각했던 '나 자신'이 내가 탓했던 불만의 원인 그 자체였던 것이다. 


요즘 '자기 발견'이란 챌린지를 하면서 '나'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다양한 각도로 해보고 있다. 어디선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원인은 결국 '자신'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꼭 맞는구나 뼈가 아플 정도로 깊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스토리 가지고 생각 등등 모든 것을 띄워놓고 정리하고 있는 중이랄까.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50년은 조금은 새로운 방향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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