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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Sep 17. 2022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완벽할 수 없고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불렛 저널 中)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2인실 사무실을 깔끔하게 꾸민 지 얼마 안돼서 어느 날 갑자기 다른 2인실로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내 옆자리에 사람이 충원될 걸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옮길 곳을 보니 문을 열면 두 발짝 앞에 바로 뒤통수가 보이는 자리.

의자도 좋은 거 사뒀는데, 눕는 기능은 전혀 쓸 수도 없을 공간이었다. 이미 입주해서 쓰고 있는 분은 안쪽에 아늑히 터를 다 잡아놓은 상태였고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그곳은 안될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1인실 남은 게 있냐고 물었다.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왼쪽 오른쪽으로 사무실이 쭉 이어져 끼인 공간이었다. 문을 열었는데, 창문 없는 독방치고는 그래도 아늑했다. 그래, 차라리 여기가 낫지. 한 2만 원 차이 나는데 그래도 혼자가 낫다며 1인실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짐이라고 몇 개 없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옮기려니 두세 번은 왔다 갔다 움직여야 했다. 휴... 갖고 있던 집기들을 더 좁아진 공간에 욱여넣었다. 짐을 옮기고 책상과 의자의 좁은 틈으로 옆으로 꽃게처럼 들어가 앉았다. 어이가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 창문이 없으니 낮인지 밤인지,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맑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내팽개치고 사무실을 나왔다. 왠지 오늘은 그렇게 리프레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환경에 그렇게 휘둘리는 편인지 처음 알았다. 분명 이직하면서 사무실 옮길 때는 좋던 나쁘던 지상이던 지하던 크게 상관 안 했는데, 난 생각보다 환경에 잘 휘둘리는 성격이었구나. 깨달으면서.


그리고 다음 날,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봤다. '지금 불편한 이 느낌, 뭐가 불편한 거지?'

그랬다.  원래 놓인 책상의 위치 때문에 의자와 책상 사이의 간격이 비좁았다. 의자가 계속 간이벽에 닿았다. '그래그래, 일단 책상을 옮기고 의자 뒤에 공간을 확보하자.'

책상 위치를 바꾸고 의자를 놓으니 정말 한결 그럴듯해졌다. 나머지 선반과 서랍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사무실 생활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사무실로 출근한 지 일주일이 됐을 즈음 친한 언니가 독립을 축하한다며 화분을 하나 사 가지고 근처에 왔다. 이전 사무실이라면 공간도 좀 있어서 들어오라고 했을 텐데, 화분만 받고 밖으로 향했다. 기분 좋은 만남을 뒤로하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화분 하나 만으로 분위기가 확 달라짐을 느꼈다. 

'잘 죽지 않는 화분이라니 이 아이와 잘 커나가야지.'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사무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보다 소리에 예민하진 않는 편이다. 다른 것에 집중하면 주위 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영 안되면 이어폰을 끼면 됐다. 사무실 문을 닫아두면 너무 환기가 안돼서 정신이 몽롱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그건 문을 살짝 열어두면 됐다. 내 사무실 옆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비가 오는지 어떤지 카톡으로 지인들과 얘기하면 뭐 그렇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옆 사무실에 계시는 남자분의 트림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 코 골고 방귀 뀌는 소리를 듣던 날, 정말 아차 싶었다. 그분의 소리와 함께 내가 커피 한 모금 목으로 넘기는 소리, 간식 뜯는 소리, 김밥 먹는 소리.. 뭐하나 맘 편하질 않았다. 


그리고 아이의 방학이 겹치면서 어느 순간 사무실을 띄엄띄엄 가기 시작했다.


3개월이면 구매대행으로 초석 정도는 다지고 있을 줄 알았건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쌩초짜도 아닌 나인데, 왜 아직 유령처럼 여기저기 떠돌고 있나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건 날로 좋아지고 돈 벌어야 하는 물건 파는 건 자꾸 흥미가 떨어졌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셀링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유튜브에서 몇 개월 하지도 않았는데 매출이 이러 저렇게 나고 있다며 자신들의 성공스토리를 읊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나와 비교하고 있었다. 비싼 강의 싼 강의,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이런 제품 저런 제품 다 조금씩 해봤는데 앞이 캄캄했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마음도 잡히질 않았다. 이해는 하겠고 웬만한 건 다 알아듣겠는데, 뭔가........... 이 방법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집중이 안됐다. 이걸 하고 있음 저게 신경 쓰이고 저걸 하고 있음 또 다른 게 신경 쓰이고. 아이도 방학이고 사무실은 걸음이 안 떨어지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낮밤이 바뀌어서 넷플릭스에서 허우적거리는 날도 많았다. 


그래, 사무실도 셀링도 모두 실패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처음 들어본 단어
불렛 저널



불렛 저널이 추구하는 사명은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두 가지 자원, 즉 시간과 에너지를 더욱 의미 있게 쓰도록 돕는 것이다.


방황하던 어느 날 새벽. 그럼 전자책을 하나 더 써볼 수 없을까 크몽을 기웃기웃하다가 생소하지만 낯익은 [불렛 저널]에 관련된 전자책을 보게 됐다. 전자책 판매개수도 꽤 됐다. 


"가만 보자, 이거 내가 어디서 봤지?" 


잠시 생각해보니 일전에 읽었던 에세이 작가님의 유튜브에서 봤던 게 기억났다. 그분이 2년여를 집에 있으면서 아침에 일어나 생각나는 걸 전부 손으로 노트에 쓰라고 하는 얘길 듣고 반신반의로 쓰기 시작했는데, 정말 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지 내가 알고 있더라며 어두웠던 마음과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간단히 불렛 저널이라는 게 있는데 다음에 그것도 자세히 알려주겠다고 했었나..? 

아무튼 그때다. 그때 들어봤다. 


이놈의 호기심 버튼이 또 활성화되었다. 바로 유튜브랑 크롬, 네이버 검색을 했다. 밀리의 서재도 검색했다. 불렛 저널이라... 이건 일단 종이책으로 구매해야지 싶었다. 도대체 이 수첩을 어떻게 쓰는 거며 어떤 도움이 된다는 건지 빨리 읽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어릴 때 일기 쓰며 기록하는 걸 좋아했고, 20대에 처음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간관리, 업무관리 등의 자기 계발서를 보면서 다이어리에 한창 빠졌던 적이 있다. 억지로 억지로 번역 프로그램을 써서 일본 유명한 다이어리 회사에 어떻게 하면 당신들의 다이어리를 살 수 있는지 물어서 해외배송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로 시간관리하려고 효율적인 삶을 살아보겠다고 참 다양한 다이어리를 써봤는데 그때뿐이었다. 항상 무엇인가 불편했고, 뭔가 나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지나 핸드폰과 아이패드 + 여러 가지 동기화 프로그램들이 생기면서 메모 유목민으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불렛 저널을 구입한 지 2주 만인가... 3주 만에 처음으로 책을 펼 수 있었다. 그리고 반절을 읽는 동안 책에는 온통 내가 그은 줄과 글씨로 정신없이 낙서되어 있었다.


그냥 수첩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 삶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쓰여있었다. 

(지금 조금이라도 고민이 있거나 답답한데 자기 계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최근 두 가지에 실패했다. 사무실을 유지하지 못했고, 셀링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했다. 맞다. 누가 나에게 비난을 하던 격려를 해주던 팩트는 팩트니까. 


인정하고 다시 고민했다. 다른 방법을 찾았다. 옆집에 사는 여동생의 집 방한칸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예전에 그곳에서 일해 보려다 집과 너무 가깝고, 자꾸 눕방을 하게 돼서 집은 안된다는 경험이 있어 외부 사무실을 구한 건데 다시 방 정리를 하고 있어 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소음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공간도 넓고 피곤하면 아무 때나 눈 붙이고 잘 수 있고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 먹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경치를 볼 수도 있고 몸이 찌뿌둥하면 안마를 하고 운동이 고프면 트레드밀에서 걷기도 한다. 


안갯속을 허우적 되던 셀링도 리프레쉬 겸 소규모 셀링 모임에 갔을 때 들었던 다른 프로그램과 카페를 알게 됐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뭔가 나에게 맞는 안정적인 그런 느낌이 들었고 조금씩 조금씩 의지가 불타오르려 하는 게 느껴졌다. 이것저것 다른 방식을 듣고 접하고 해보다 보니 또 다른 것들을 알게 됐고, 희망의 싹이 보였다. 



아직도 어느 것도 결괏값이 나온 건 없다. 실패하고 실패했을 뿐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많다. 끝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건 그것을 받아들인 순간, 다음 스텝을 나갈 수 있다. 

남들과 다른 보폭이더라도 한 스텝 한 스텝 조금씩.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밟아가면 결국은 정상은 나온다. 

그 정상의 높이가 다를 지언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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