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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Oct 01. 2022

사십춘기

인생의 변곡점.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가 연락이 왔다. 퇴사 후 회사와의 갈등으로 분쟁의 시간을 갖느라 이직도 못하고 분쟁처리에 올인했다고 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그 친구는 나처럼 어린 나이부터 이일 저일 잔뼈가 굵었다. 얼마 전에 짧은 결혼생활을 정리한 그녀는 이직과 사업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직을 해서 몇 년 더 중소기업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그 뒤를 걱정했다. 항상 비슷한 급여, 그마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현실적으로 이직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온라인 판매를 할까 고민 중이었다.


어제는 오래전 직장에서 알게 된 언니가 연락이 왔다. 두어 달 서로 너무 바빠 연락도 못했었는데 오랜만에 연락 온 언니는 1년 뒤 퇴사 날을 표시해 두었다고 했다. 미혼인 그녀는 온라인 쇼핑몰 회사에서 만났는데 그 후로 웹디자인+AMD 일을 하다가 최근 MD 이직했다. 회사 업무에 모든 정신력과 체력을 소비하다 보니 주중 저녁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얼마 전 연락한 아는 동생은 오늘은 괜찮았다가 내일은 지옥이라며 매일매일 회사 나가기가 싫다고 했다. 담배가 더 늘었다는 말과 함께.


또 어떤 이는 그동안 회사에서 나름 큰 잡음 없이 회사를 다녔는데 최근 회사가 사업을 확장하면서 혼자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너무 광범위하게 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가만히 보니 다들 

1.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나이

2. 생각보다 오래된 경력(최소 13년 이상) 

3. 누구보다 열심히 확실하게 일하려는 성격

4. 매번 비슷한 연봉과 아무런 서포트 없이 매출 또는 1인 다역만 요구하는 회사 환경.


최소 4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5. 삶을 알아버린 나 자신.





사십춘기


그래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 검색하면 뭐라고 정의되어 있을까 궁금했다.


사십춘기 

40대가 사춘기처럼 느끼는 신체적ㆍ정서적인 변화를 뜻하는 말이다.

실제로 40대가 넘어서면 예전보다 체력이 떨어지며, 

중년이라기엔 젊고 청년이라기엔 벅찬 애매한 나이 때문에 우울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단순히 사회생활을 오래 했다거나 나이를 먹었다거나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정말 설명 그대로 뭔가... 딱. 중년이라기엔 난 너무 젊은것 같고, 청년들과 어울리기엔 너무 나이 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20대 어린 직원들을 대할 때 나에게서 예전의 본부장, 상무급의 임원분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연예인, 연애, 스타일, 트렌드 등을 얘기하는 것보다 사회, 경제, 정치뉴스, 투자, 삶, 부모나 자식, 노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나는 그냥 나인 것 같은데 자꾸 뭔가가 어색했다. 체력도 생각도 마음가짐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 또한....

예전에 읽었던 책을 기억했다. 


한계주 시인의 < 여든이 되어 보렴 >

딱 내 나이 29살에 읽었던 시집이었다.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젊을 때 내가 따지던 시시비비들이 여든이 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내용이었던 기억이 있다.


여든까지는 아직도 40년이란 시간이 남았는데 벌써 부릉부릉 시동이 걸리는 것 같다. 전엔 사소한 것들에 목숨을 걸며 어떻게든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들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경주마처럼 그것만 바라보며 달렸는데, 최근엔 자꾸 나사가 빠진 것 마냥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졌다. 그렇다고 여태 20년을 살아온 버릇 때문인지 업무에 열중하며 열을 올리다가 또 어느 날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조용히 자리를 박차고 나와 머리를 식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마지막 퇴사를 하고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이렇게 나와있으면서 내가 좀 별종인가, 유난 떠는 건가, 책임감이 없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던 차에 저렇게 주변 지인들을 보니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다들 사십춘기의 길목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벌며 불안해하면서도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했다. 다른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회사에서 다 써버려 지친 머리와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났다. 주중은 물론이고 주말 이틀도 다음 주를 위해 비워두고 리프레쉬를 해주지 않으면 힘들어했다. 


연락을 하면서 각자에게 내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억지로 회사를 다니고 퇴사를 하면 같은 상황이 반복돼. 퇴사를 한 후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활비 걱정을 하며 또 어쩔 수 없다고 이직하게 되거든. 그걸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그제야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되지.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시도해보게 되는데 뭘 하면 좋을지 한 번에 쉽게 찾아지지 않아. 자리는 잡히지 않고 돈은 점점 바닥나고 조급해지지. 많이 힘들겠지만 회사를 다니는 지금 무언가 시작해보지 않으면 안 돼. 주중에 힘들면 주말에 두세 시간이라도 무언가 공부하고 실행해 봐야 해."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똑같이 말한다. 


"알아, 알고 있는데 그게 안돼. 지금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다."


그 마음 나도 너무 이해한다. 나 역시 그랬고 그나마 아등바등 출퇴근, 점심시간을 쪼개서 오만가지 강의를 듣고 책을 보고 공부하며 사업을 위한 서류를 준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시간만으론 내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퇴사를 결심했으니 말이다. 


똑같은 사십춘기.

그들보다 먼저 두 발짝 나와있는 나는 아무런 결과지 없이 허공에 떠다니고 있고 회사에 속해 있는 그들은 매일 퇴사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우리들........ 잘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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