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더가 되지 않을 리더들의 용기
데모크라티 바겐!(강의기록)
얼마 전,
한 초등학교 학생자치회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캠프에 출강 의뢰를 받아 갔다.
지난 학기 인연을 시작으로
임원이 바뀌었으니, 강의내용을 동일하게 운영해도 좋다는 연락에 부담 없이 수락을 하고, 역시나 부담 넘치게 준비를 했다.
강의대상이 성인일 때보다
아이들일 때 더 준비가 철저해야 하는 이유는
성인들은 '듣기만 하거나' , '듣지도 않으나'
아이들은 그렇지가 않아서다.
마침 우리 반 아이들과 해보고 싶었던 팀빌딩 협력활동 아이디어도 주체를 못 하던 참에 이런저런 교구들을 사재기했다.
쇼핑은 언제나 즐거운 법.
담임 닮아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감동받으며 별거 아닌 거에 웃겨 죽는 아홉 살 꼬마들은 수업의도를 끝내주게 읽어내며 협업했다.
그렇게 제대로 된 시뮬레이션도 해봤겠다~용돈도 좀 챙겨 새 신이라도 신어보면 어떨까~남몰래 설레면서도.
둘째까지 아픈 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출장 가는 헌 신은 가볍지 만은 않았으나,
역시나 시작되고 나면 즐거운 일이 되고야 만다.
이미지프리즘으로 시작된
첫 번째 활동에서부터 벌써 무릎을 쳤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면 곧 잘 단어가 되긴 하고, 거기에 인간이 적절히 이름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긴 하나,
결국 어휘를 사용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 맞다. 게다가 이렇게 공들여 자기화하고 나서는 기어이 꽃이 되는구나. 이야~
슬쩍 격려만 찔러주면, 모두들 기꺼이 마이크를 들어주니 오히려 내가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강의를 하러 왔다기보단 들으러 왔다는 표현이 낫겠다. 아이들이 대상일 때 주로 그렇다.
멋진 표현이 더 많았으나 미래의 요즘리더들은 글씨에도 초상권을 부여하길래 인정해주느라 못찍었다
개개인이 공들여 쓸 때는 고요하던 아이들이
6인 1조가 되어 협력밴드로 함께 쓰기를 하려니 잠시도 가만있질 못한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맞대고 목소리도 내어보고, 줄을 팽팽하게 잡아도 보았다가 어느 순간엔 돌아가며 힘을 적절히 빼기도 했다가... 저들끼리 생각을 모으느라 야단이다.
숨죽이고 ㅇ(이응)을 완성하려다 ㅁ(미음)이 되고 말아 깔깔대다가도.. 이만하면 됐다며 서로 격려를 안겨줄 줄도 안다.
나는 그저 둘러보며 감탄에 젖으면 된다.
급기야 강당바닥에 누웠다 일어났다 진지하게 시행착오를 함께 겪는 아이들이 예뻐서 혼났다.
다 함께 잠시 본다.
내 것보다 나은 누군가의 손글씨와
다소 우스꽝스러운 우리의 협력글자를.
나란히 놓고 본다.
다수결로, 때론 운에 맡겨 가위 바위 보로 선택된
한 사람의 그럴듯한 결과물이 공동의 가치가 될 때
누군가는 소외된다. 억울한 사람도 생길 것이며 예기치 않게 숟가락만 얹는 무임승차도 따른다.
다소 부족하고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지만, 공동의 노력이 공동체를 대표하는 그것이 될 때 우리는 결과보다는 함께 겪어 낸 과정을 마음 깊이 기억한다. 다시 그런 문제상황에 놓였을 때 전보다 덜 당황하고, 함께 부딪힐 용기를 서로에게 내어준다.
나의 의도가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도록 물꼬를 터주고 슬쩍슬쩍 질문을 던져준 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내 몫이다. 그런 순간이 참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각의 과정에서 아이들이 온몸으로 느낀 협력, 자율, 조정, 책임, 의무, 배려..
이밖에도 다양한 민주시민 가치들에 대해 그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결국 이날 나의 자비로 구입된 협력파이프 활동을 못하고 헤어져 원망을 샀다. 아쉬워야 또만나지~^^
교사로서의 삶이 지칠 때가 잦아질 때마다
가뭄의 단비처럼.. 내가 아직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게 해주는 아이들이 있다.
의도한 것에 더해 의도하지 않은 것까지 배워내는 아이들 덕분에 내겐 여전히 가르칠용기가 남아있다.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날 만난 아이들에겐
이미 래더가 되지 않을 용기가 내재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