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가봐라.
애가 얼마나 놀랐겠나...
휴대전화에 '삼촌'이라는
단어가 뜨면 울 준비를 마친다.
괜찮다며 겨우 눌러 담은 감정들이
괜찮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상한 노릇이다.
이틀 꼬박 이 병원, 저 병원 몸만 옮겨 다니고,
고작 택한 거라곤 대학병원 응급실이었다.
아이를 들춰 업고도 응급실이란 늘 그렇듯
기다림이 8할이다.
아픔은 함께하면 절반이 된다더니
그거 다 헛소리다.
장소만 달리할 뿐 그곳에서도 바라보는 것,
손잡아주는 것 말곤 여전히 몸은 한가하고 마음만 바쁘다. 못할 노릇이다.
이곳에서조차
10시간 가까이 아이의 진통을 아이 혼자 견뎌야
하는 게 억울했다. 애가 타고 몸이 닳는다.
'너는 울어. 엄만 엄마잖아'
무서울 수 있어.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검사가 끝나 있을 거고.
깨어나면 오랫동안 아프고
힘들겠지만 분명 괜찮아질 거야.
먹은 게 없어 기운이 빠진 와중에도
표정으로 엄마 겁나고 아파요. 전하는 아이를 안심시키고 복도로 나왔다. 난 어른이니까.
저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애가 얼마나 힘들까.
무음으로 해둔 전화기를 가만 바라보는 동시에
화면에 뜬 두 글자. 삼촌.
최대한 편안한 목소리로 용기 내 받았으나 역시나
응. 삼촌! 말고는 더 잇지를 못했다.
참 이상하다.
그날 삼촌이 전화했더라.
얼른 가보라고. 애가 얼마나 놀랐겠냐고.
마흔이 넘은 아이 둘 엄마.
나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아이로구나.
내가 내 아이를 걱정하듯,
그들도 어린애 윤미를 걱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