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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Sep 20. 2023

가족끼리 자전거 같이 타는 거 아니야!

수건 2장으론 확실히 부족한 고통!

일단 버스를 타.
터미널을 바라보고 서서 왼쪽은 고속이고, 오른쪽은 시외버스야. 오른쪽으로 가서 그냥! 춘천 가는 표 주세요~ 하면 되니까.

2시간 20분이면 족해.
할 수 있지?





우리 윤미 보고 싶다.

 


왜 우는지 모르게 곧 가빠지고 말 흐느낌.

더도 말고 덜 것도 없던 한 마디가 전부였다.

전화기 너머에 당신은 내가 갈 수없다는 걸 알아 더 그리웠을 거다. 2시간 20분만 버스에 몸을 실으면 될 것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을 저 혼자 밟아 올 수 있을 거라 상상도 해본 적 없을 거다.

더욱이 내가 공부하고 용돈벌이를 하는 곳은 감히 당신이 밟아도 될 곳이라는 생각도 못했겠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알바끝나면 부지런히 데리러 갈게.
버스 내리면 그 앞에 나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할 수 있지?




이제 막 엄마품에서 내놓은 아이를 인도 좁은 도로 곁에 내려놓는 심정도 이보다 더 할까.


터미널까지는 잘 찾아갈지.

버스표는 혼자 살 수 있을지.

엉뚱한 목적지에 다다르거나,

감히 휴게소에서 잠시 내려볼까

 맘을 먹진 않을지.


당신 못지않게 내 마음에도 긴장이 소용돌이쳤지만 당장 이곳 춘천으로 오도록 단단히 일렀다.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데리러 가야지.

뒷자리에 태우고 학교까지 오며 여기저기 소개해줘야지.

그리고 저녁으론 인공폭포 닭갈비집에 꼭 데려가야지.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이런 마음을 먹어보겠나 싶어 애초에 망설이지 못하도록 반복해서 일러주고 안심시켜 놓고도, 온몸이 구석구석 긴장하느라 애가 닳았다.



1시간 30분 채워야 했을 수업을 20분이나 일찌감치 끝내고 갑자기 몸이 너무 좋지 않다고, 다음 과외 때 시간을 더 길게 보충하겠다고.


본의 아닌 척.. 아랫배 한 번 이마 한 번, 셀프로 더듬어가며  황급히 터미널로 향했다.

A.C. 어색했나.



강릉발 시외버스는

나보다 1시간 45분 늦게 터미널에 닿았다.

서두를 것도 없었는데 잔뜩 초조한 탓이었으리라.





있다.

미널까지 어찌어찌 잘 갔고.

고속 말고 시외. 그러니까 건물 오른쪽인 것도 잊지 않았고. 용케 춘천행 버스표도 혼자 사냈고.

휴게소에서 감히 쉬어갈 생각도 접어가며.

진짜 왔다. 해냈다.


있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고  

버스 계단을 웃지도 못하고 내려와 겨우 안심하는 그녀를 보고 나 역시 전~혀 걱정하지 않은 척 쿨하게 건넨 말.



거봐.
별거 아니지?

잘했어! 가자!



그렇게 그녀를 태우고 2번 짧게 멈춰 선 것 말고는 쉼 없이 학교까지 달렸다.

뒷자리에 세안용 수건 두 장을 겹쳐 까는 것 말고도 분명 방법은 있었을 거다. 거금을 쓰더라도 택시를 타는 등.




돈이 란 걸 좀 썼으면 이제 보니 11분이면 될 거리를 꼴에 춘천 하면 낭만! 아니겠냐는 심산도 아니고..


미쳤지.

굳이 노인내를 자전거로 맞이해야 했나.


왼쪽은 당시 내가 아껴 모은 알바비를 고스란히 투자해 마련한 소중한 이동수단. 이걸 두고 택시나 버스를 탈 생각은 추워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오른쪽같은 작품이있었더라면 어땠을까싶다



이제야드는 생각이지만 그 당시 어째서 고민이라곤 없었던 게 나도 신기하다.


 4km.  혼자 밟으면 운동삼아 15분~20분이면 될 거리였다. 꼭 나만한 체구의.. 나만 젊다 생각했던 우리 할미를 굳이 저 쿠션감 없는 철근 위에 앉혀 페달을 밟았다.

1시간 넘는 시간,  내 허리를 감싸 잡고 그냥 있었던 게 아니라, 기를 쓰고 견뎠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곳저곳 정말 구경이란 걸 시켜는 드렸는지, 인공폭포 닭갈비를 대접하긴 했는데 나처럼 그녀도 제 맛을 느끼기는 했는지. 기억이 없다.

강릉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터미널까지 그 짓을 한 번 더 당했어야 했던 할미는 다음 해 명절에서야 그 후 얼마나 몸살을 앓았는지 후기를 전했다.

수건 2장으론 확실히 부족한 고통이었다고.

뒷자리의 빡셈을 나로선 알 길이 없었던 탓이다.



종종 자전거를 볼 때면 희한하게 랑이가 아프다.

저는 가죽 안장에 닿는 느낌만 알면서, 철제 의자에 반복적으로 덜컹덜컹 닿는 자극을 아는 척, 저리다.

나에게 자전거란 그렇다.




엄마의 씁쓸한 추억을 아이들이 알리가 있나.


관광지에서 돈 주고 타는 가족자전거를 타자고 아이들이 조를 때마다 나는 말한다. 

단호함이 말도 못 하다.




가족끼리 자전거 같이 타는 거 아니야!

그리고

자전거는 돈 주고 타는 거 아니고!

 없을 때 타는 게 자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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