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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Feb 24. 2024

"그렇게" 먹고도 왜 살이 안 쪄?

남편이 나를 부끄러워 한 이유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어왔다. 쭈욱.

10 대 초반부터 시작된 공허함 탓인지 그 후로 줄곧 그래왔다. 식사 자리에서 "쟨 좀 식탐이 있지!"로 시작해 관계가 깊어지면, "얘? 어후~ 토할 때까지 먹는 애야!"라고 나를 소개하는 지인이 하나 둘 는다.



오고 가는 대화 속 나의 그것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파악하는 타인들.


1. 말수가 확연히 준다.
2. 하나라도 더 먹고자 손과 입이 바빠진다.


신체부위 중 오로지 '상체'만이 표현의 도구로 역할한다. 주로 식사시간에 그렇다.  

평소엔 그토록 수다스럽다가도 음식 양에 제한이 있거나, 한 그릇 음식의 개인 메뉴가 아닌 이상, 최대한 대화 주도권은 상대에게 넘긴다. 소극적 참여자로 돌변. 고개를 가열차게 끄덕이는 정도로 예를 다하는 편이다.



남편은 결혼 후 술이 거하게 취한 어느 날.

연애 때, 그런 나를 좀 부끄러워했다고 고백했다.


멀쩡하게 생겨서

(허.. 참! '멀쩡'이 적합한 단어인가 싶다만)

어딜 가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 

주로 밑반찬, 심지어 그것이 열무김치 한 그릇일지 언정 치열하게 먹는 모습이 낯설었다고 했다.

자주 찾던 즉석 떡볶이 집에서 육수가 끓어오를 기미도 보이지 않는 순간, 이미 셀프바를 몇 번이고 기웃대며 본인에겐 '별것도 아닌' 단무지를 그렇게 심오하게 음미해 가며 반복해 가져다 먹는 모습이 궁금하고 다소 불편했다고 말이다.

"어머~~  이 집 단무지 맛있다"

내가 먼저 그에게 뱉은 말이라곤 주로 이 정도였다는데 글쎄.. 난 기억이 없다.



딸 둘은 키워도 개를 키우진 않으니 뭐,

아직 그 버릇 개 주진 못했다.


식당에 가면 어째서 그토록 마음이 급해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직원분께서 각종 밑반찬을 마치  폭의 그림같이 깔아주는 고깃집이나 한정식 집에라도 가는 날이면 음식점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분주하다.


마치 동행한 이들이 나보다 한 점이라도 더 집어 잡수면 어쩌나 불안해 포효하는 하이에나 마냥.


오직 깍두기에 김치만 놓아주는 닭갈비집, 순댓국 집에 가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매한가지.


가끔은 나도 메인 메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한 번쯤 고요한 몸가짐으로 상대와 간간이 눈도 마주쳐 가며 대화를 이끌고도 싶다. 아주 가끔은 말이다.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라면


어쩜 "그렇게" 먹고도 살이 안 쪄?


이거다.

살이 안 찌는 이유보다는 "그렇게"에 매번 방점이 찍힌 질문 맞다.


이유라면 아마도 '운동'이겠지 싶다.

살을 빼기 위한 목적과는 거리가 멀어서 되려 살이 안 찌는 거라면.

재수 없으면서도 온전한 답이 되리라.



미친 듯이 먹는 이상의 운동을 '기꺼이'하는 게 남들이 궁금해하는 비결이라면 맞다 하겠다.



이제 흡입 양을 적절히 조절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른 이들보다 10% 이상은 행복하다 믿는다.


 다시 시작할 운동에 대한 기대.

여기에...

 그간 채우래야 채울 수 없었던 감정적 허기를 음식이 아닌 것으로 채울 것에 대한 용기.


이 두  가지 덕분일 거다.


이런 삶을 선택한 내게 오늘 처음 말해본다.


고맙다, 오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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