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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Feb 22. 2023

그녀의 스케일

당신의 자식사랑과 나의 엄마노릇 간의 수준차이, 헤아릴 수 없는 깊이







그녀의 스케일이란.... 카레냄비의 실물크기를 어디에 빗대야 할런지, 누가보면 내가 애 대여섯딸린 애국녀인줄 ~





이건 카레, 애들 먹이고.
이건 물김치, 재하 아직 매운 거 못먹잖냐.

이건 육개장, 남편 챙기느라 너 굶지 말고

이건, 홍삼 달인 물이다. "너만" 먹어라.



남편 줄 것은 돈 주고 사셨어도,

딸내미 줄 건 '수 시간'을 손수 다려내셨음을.

덧붙이지 않으셔도 다 안다.


남편을 잘 챙기라기 보단, 남편은 간단히 챙기고 너 잘 먹고 너 잘살란 함의가 가득 담긴 멘트랄까.




몇 달 만에 딸을 만나 붙들어 앉혀 놓고 더 보고 싶으셨을 텐데... 이 밤에 어찌 왔냐며,

하루종일 일하느라 아이들 돌보느라 피곤했을 것이 안쓰러워 어서 일어서라고 성화시다.

어여 가라. 어여가.



보고싶으셨으면서.









친딸에게 보다 더 내게 애틋하신 이 분은

놀랍게도 '소연어머니'

알아듣기 쉽도록 쓰자면... 친구의 어머니시다.


그 사실을 가끔 나도 잊고

소연이도 자기 엄마의 정체성을

이따금 궁금해 한다.


윤미가 그렇게 좋소?
딸 하나 더 낳고 싶다더니
 생일도 하루 차이인데
그냥 우리 친구 말고
자매 삼아 살아야 겠네.


지 자식 이마가 찢어져 피가 철철 나도 담대하고 지나친 의연함 탓에 주변을 놀라게 하는 소연인

서운할 줄 모른다. 오히려 엄마에게 아들 같은 딸만 있었는데 딸다운 딸이 하나 더 생겨서

본인 부담이 줄었다며 기뻐하는 아이다.

나도 그다지 딸답진 못하다만. (미안)


내가 첫 아이를 낳은 2014년 11월에 난 소연이와 어머니를 알지 못했다.

재이가 목을 가누고

추운 겨울이 지나 아기띠를 매고

겨우 외출을 감행했던 봄 날.


남편 친구의 여동생,

소연이는 나와 초면이었다.

결혼 전 해부터 4년을 그 좁은 동네에 살면서도 지척에

 같은 나이 동네 친구가 있는 줄도 모르고

바삐 살았다.

몸만큼이나  온전하지 못한 정신 탓에

더 바빴던 기억이 있다.


엄마없이 엄마가 된 다는 부담이었는지,

호르몬 탓에 얻은 우울감 탓이었는지.


찌그러진 공처럼 핏덩이의 보호자 노릇을

겨우 해 나가던 시기였다.

같은 시기에 놀랍게도 소연이는

 자투리 땅을 사서

독특한 모양의 2층짜리 건물을 지어 올렸다.


나이만 같았지, 딸 둘을 일찌감치 키워내고

(그것도 백퍼 독박으로)

 열심히

 벌어서 건물주가 되어있었던 게 꽤나 신선했다.

아니 충격이었겠지 싶다.


자주 가던 작은 도서관 앞에 예쁜 카페(루치아) 사장님은

나와 친구가 되었고

이제는 친언니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자매사이를 맺고 산다.

그녀(소연 어머니)의 스케일과

꼭 닮은 그녀(소연이)의 스케일.

역시 피는 못 속인다.


속 끓지 말고 괴로우면 나와. 니몸 상하면 아무 소용없다.
돈 부족하면 얘기하고!


 나의 눈을 마주하지 않았는데, 문자만 몇 개 주고받고도 귀신같이

 내 상황을 읽고 빠르게 캐치한다. 무서운 것!






 소연이가 에스프레소샷을 뽑다 말고 2층으로 올라와 나를 대신해

첫째 아이의 이유식을 떠 먹일 때만 해도 나는 소연 어머니를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아이와 나의 차이라면,

곁에 엄마가 있고 없고 정도라는 것 말고는 굳이

 알려하지도 않았다.

내가 터치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도 없었고.

그런 분이 어느 날부터 공동현관 번호를 누르고

생색낼 시도도 없이 갖가지 반찬을 현관문 앞에 실어 나르기 시작했고.


 함께 나누기를 워낙 기꺼워하시는 친구의 어머니 정도로 여기고

감사인사를 전하고는 육아에 젖어 다시 하루하루 살기 바빴다.




 엄마가 너 양딸 삼고 싶으시데. 진짜야.
허투루 말씀하실 분 아닌 건 내가 알아.



든든했다기 보다 부담이 앞섰다.

내가? 과연 내가 뭘 해드릴 수 있을까?


다시 누군가의 딸이 되면 내 역할에 열심을 기할 수 있을까?

내 마음에 온기가 찾아올지, 그 온기를 상대에게 전할 수 있을지

묵직한 염려가 앞섰다.


염려, 어머니와 나의 그것 사이에는 간극이 참 많이도 깊었다.

그녀의 염려는 단 하나,

나의 먹을거리(다른 말로 건강이었다)


내가 아프지나 않은지. 잘 챙겨먹고는 사는지.

오로지 잘 먹이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울기도 했었다.





좋은 재료에 진한 정성을 담아야 음식을 내어오는 분의 요리는

내가 그간 먹고 살아온 것들과는

  태생이 달랐다.


호텔 고급요리가 따로 있나 싶게 보통의 요리도 고급지게 그려 내신다.


소연이는 저런 걸 먹고 자랐구나. 싶어서

살짝 시기가 움튼 적도 있다. 낯선

 세계를 엿보는 기분마저 들었었다.







 오늘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30여분

 운전해 가는 내내 하루종일 쌓인 피로도 드러날 줄 몰랐다.


진작에 갈껄.

이 길이 뭐그리 밟기 어려웠을까.

아이들 챙긴답시고. 내 일 한답시고. 너무 늦었다.




어머니, 윤미예요. 저 지금 출발해요



뭐한다고 이 밤에 와.
내일 또 학교 갈 애가!
내가 간댔잖냐. 오지 마라. 됐다.


보고 싶어 가는 거예요.


그럼 와라!




그녀의 스케일은 한결같이 크고 그녀의

 사랑은 매번 깊다.

내가 뭐라고...

도대체 내가 당신께 뭐라고...

내게 이렇게나 큰 사랑을 주시는지 묻지 않는다.



나도 언젠가는 제법 깊다 할 사랑을 드릴 날이 오겠지.

엄마노릇을 적당히 해내고 나면(끝이 있겠냐마는)

그땐 딸노릇도 지금보다는 잘 해내지 않을까 싶다.


 다만,

 너무 늦지는 않도록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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