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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Jul 23. 2024

먹지 않습니다. 감자!

감자의 추억

여름이면 연곡면에서 방학을 지냈다.

(경포 바닷길을 따라 속초를 향해 달리다 보면 주문진에 못 미친 호젖한 시골마을이 그 곳이다) 당시 우리 집은 분명 남문동이었는데, 방학이면 몇 주고 반기지도 않는 친척 네에 머물며 감자를 갈았다. 

이제 막 아홉살 생일이 지난 나는 할머니 곁에서 날이 선 강판에 하루는 감자를, 다음 날은 가운데 손가락을 번갈아 갈며 그녀의 돈벌이를 도왔다.

외관을 갖춘 매장 하나 없이, 연곡천 둑방에 평상 하나  두고, 2000원에 감자전 3장을 부쳐 파는 일이 할머니의 것이었다. 생계형 밥벌이었는지 단기 알바였는지까지는 관심에 둘 나이가 못 되었으리라.


이제와 궁금한 게 하나 있다면 이렇다.

감자 대신 수시로 애먼 손가락을 가느라 소금 간 대신 짭쪼름한 눈물 간을 축이면서도 곧 죽어도 제 몫이라 여기던 아홉 배기 소녀.

제 주먹보다 큰 감자를 요리 조리 돌려 가며 강판에 부벼대던 손 끝 야무진 꼬마가 어째서 돌연 부엌 일에 서툰 엄마로 근근이 살고 있을까?


그 당시 궁금한 게 있었다면 그것도 하나.

용케 시커먼 먹까지 찾아 갈아, 굳이 붓글씨로 써서 챙겨 온 메뉴판 정가. 

 [ 이 천 원에 석 장, 덤 안 줌 ]

애초에 흥정의 여지라면 초장에 싹을 잘라 버리고 말테다!라는 결심을 붓글씨에 묻혀 낸 이 여사는 손맛은 좋아도 고객들과 대화를 섞을 줄 모르는 도도함을 지닌 인물이었다. 결연한 울 할미는 어째서 2천원에 세 장짜리 감자전을 아이를 달고 오는 이에게는 곧 죽어도 넉장 씩, 어떤 날은 내 몫 인줄 알았던 감자 떡까지 얹어 주었냐 말이다. 상대적이지만 말쑥한 차림의 낚시꾼을 상대로는 콩기름도 덜 두르는 느낌이었달까?

손 못지않게 눈길도 야물딱진 손녀는 하루 종일 제 할미의 손놀림만 구경하고 앉았어도 지루한 줄 몰랐다. 후각만 피곤할 뿐. 감.자.감.자한 냄새.


내 손으로 갈아 짜 낸 감자에 가라앉은 녹말가루를 긁어내던 정성이 애틋해 차마 버리질 못하고, 저 혼자 애 딸린 낚시꾼 마냥 넉 장은 거뜬히 먹어 치우기를 삼시세끼 한 적도 여러 날.

먹는 일에 진심인 나로 하여금 감히 전의를 상실토록 만드는 유일한 메뉴가 감자요리인 이유 맞다. 이 정도가 내게 감자의 추억이라 해 두자.


왼쪽: 강원도민 인정 진짜감자전, 오른쪽: 경악, 가짜감자전(감자를 갈아 물기를짜낸후 한참동안 기다리면 감자물 아래 단단하게 찐 녹말이 가라앉는데 이것과 짜낸 간 감자를 섞어만듬)

감자전을 시켰는데 감히 감자채전 따위를 내어주는 곳에서 음식의 정성을 논하지 말라며 일장 연설이 가능한 강원도 태생 촌×이긴 하나,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감자? 먹지 않습니다!



더욱이 운동 초보 시절 탄수화물을 적으로 삼던 시기, GI지수까지 빌려다 밉상 삼아온 채소.

회복할 수 없는 우린 그런 관계가 되었다.

기피대상 1순위로 등극.


다시한번 공언합니다만,

먹지 않습니다. 감자!





(감자옹심이는 먹고요. 허허)


2탄. 탄수화물은 죄가없습니다. (감자를 먹지 않는 두번째 이유: 엄마의 소풍 도시락) 연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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