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어린이라는 세계. 너의 전두엽이 자라는 중.

by orosi

송전 할머니를 아빠는 엄마라고 부르지.
근데 왜 엄만 어머님이라고 불러?
엄마의 엄마는 어디 있어?


올해 여섯 살이 된 아이가 처음 내게 묻는다.

수술 후 부쩍 가족들과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진 덕분일까.

그 덕에 아이의

전두엽이 열일 중인가 보다.

계속해서 질문이 끊이질 않아 나 역시

간만에 전두전야에 불을 붙여 최대한

적절한 답을 늘어놓았다.




그래? 엄마의 아빠는 죽었어?
우리 아빠는... 죽을 만큼 나이가 들었나?
아직 살 수 있어?
엄마는 언제 죽어? 나랑 더 살 거지?



채용 면접 뺨친다. 이런 게 불수능인가;;

이토록 철학적인 질문을.

하나도 모자랐는지 옹알이 터진 그날처럼

쉴 줄 모른다.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애잔한 마음도 들었지만.


내 마음에 전과 다른 빛이 보였다면.

조부모에 대한 질문이 썩 불편하지만은 않았다는 거다.


이 아이도 알고 가야 할 나이가 됐나 보지.

더욱이 제 부모의 죽음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때가 됐다는 게 흐뭇해진다.

우리 아이가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뭐 이런 게 다 기쁜가 싶네. 음하하.





첫째 아이는 자라는 내내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가르침을 쉬지 않고 전해 줬었다.

후생가외.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네 글자지만.

뼈 때리게 체험하며 살았다.

그 외?

저 감성 말해 뭐 해. 울어야 할 때를 놓치는 법 없이 잘 울어주는 아이. 그게 다인 줄 알았는데 이젠 논리도 따라갈 길 없어서 논술학원은 안 보내도 되겠다.

종종 내 말이 억측일 때와 논거가 빈약한 틈을 타 우아하게 훅 들어온다. 결국은 나에게서 진심 어린 사과를 잘도 이끌어낸다. 가끔 속으로 외친다.

' 아. 짜앙나! '




둘째 아이는 성별을 가늠할 수 없다.

몸도 지그시 기대거나 살며시 빨딱 대는 법이 없다.

90도, 180도로 던지고 쓰러지고.


중간이란 게 없는 아이다.

그 용기는 말도 못 하고 다쳐도 또 한다.

뻔뻔함과 호기로움도 필요 이상 갖추셨고,


하나 살~~~~~~짝 아쉽다면

도통 자기 속내를 엄마에게

비추질 않아 늘 궁금한 아이다.


그런 애가 몸이 아프니 엄마 곁을 떠날 줄 모르고

하루에 9가지 약을 짧게는 2시간 간격,

길어봐야 하루 2,3,4회 짜리니...

서로 겹치지 않도록 텀을 두자면

하루종일


자~ 이리 와~
그다음 약 넣자.
.
한 번만 더 넣고
마저 먹자.





주부들은 뒤돌아서면

끼니때가 온다더니, 우리 집은 요 며칠

뒤를 돌 마음을 먹기도 전에 약 때가 되고 만다.


아직 잘 떠지지도 않는 아이의 두 눈덩이가

시퍼렇다가 이젠 누렇게 변해간다.

핏물은 기본.


그렇다 보니 괴로워하는 아이를

달래 보려고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부터

가족들과 있었던 에피소드.

엄마의 어릴 적 진상짓까지


관심을 돌려 통증완화에 기여하고자

애쓴다. 나도 기특하다.


"엄마 어렸을 때 엄마가~

"엄마네 아빠는~~


이런 말들의 고리 고리들이 아이 머릿속에서

연결되고 있었나 보다.

조각들이 맞춰지고 그것이 현실의 부재와

맞닿다 보니 질문이 되었겠지 싶다.

기특하고 재미있다.


이제 묻기 시작했구나. 너.




3시간 남짓 멀리 둔

아버지 산소에 혼자 가던 날.

첫째 아이가 내게 쥐어준 자작시가 있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도치맘이 되어보자면

곧 둘째도 내 손에 온기 있는 뭔가를

쥐어주지 않을까.


이 아침 조금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