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에 임하는 엄마의 자세

아빠의 자세도 따로 있나요?

by orosi

팬데믹 덕분인가 때문인가.


아이는 어리고.

회식은 기쁜만큼 불편한 자리가 된 지 오래다.


부부란 각자 다른 것에 취약하다. 서로의 취약분야가 대조를 이룬 덕에 그나마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여기까지는 드라마에 나올법한 이상적인 가정.


요리와 청소나 육아가 여기서 말하는 '전공분야'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한 명은 요리를 전담하고 다른 하나는 청소를 한다면야.

음식을 차리는 일, 청소를 하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 따박따박 돈을 벌어오는 일.

각 역할을 n분의 1 하고는 가중을 따져 묻지 않고, 그저 쿨하게


자. 너 2개, 나 2개 ! 됐지?

할 수 있는 가정이라면 얼마나 속편할까? 현실은 아득하다.





부엌 일을 엄마가 할 때,

'아들에게만 공을 들이는' 할머니에 대한 저항만 있었지, 나 또한 부엌 일 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몰랐다. 삼시 세끼 차려지는 밥상에 대한 공경과 그리움을 알지 못했다. 이전 세대 가부장들이 실패한 마음을 어린 나도 배우질 못했다.

밥을 차리고 치우는 일이 '하찮은 일', '잘 해 내는 게 당연한 일', '따박따박 누구도 그 노고를 모르는 게 익숙한 일'로 스쳐지나갔던 것을 알아차린 건 최근이다. 새삼 미안함을 느낀다.


아침 밥을 차리며 며칠 째 불편했던 마음이 솟아 났다. 오늘이 회식날이구나. 작년이라면 '빠져도 좋았을 그 자리'에 오늘은 소속되고 싶었다. 소속되자니 어째서 내 맘 불편한 걸까?


아침부터 한 아이는 몸살기를. 다른 한 아이는 충혈에 퉁퉁 부은 눈을 어쩌질 못하고 동시에 안긴다. 휴~

오늘도 어렵겠다.


남자들의 회식은 당연히 시간을 비워내야 하는 것이고, 엄마들의 회식은 겨우 양해를 구할 것인지. 불과 24시간도 안 된 <직장 내 독서모임>에서 나누었던 '누구누구네 엄마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남들 앞에서 나는 거창한 이상만 짓껄이고 있었다. 막상 불편한걸 보니.




밥은 책처럼 복사가 안 돼. 매번 다 차려야지.
아점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저녁 차릴 시간이야.


<가녀장의 시대> 에서 슬아는 그제야 복희(엄마)를 돌아본다.

복희의 씩씩한 푸념에, 그제야 상상한다. 하루 두 편씩 글을 쓰는데 딱 세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 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수도 있다.(대게 식사를 마주하는 가족들이란 그렇다. 기어이 아무런 반응이 없고야 만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 위에 놓였던 문장이 언제까지 기억될까? 곧이어 다음 글이 차려져야 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 세번 씩 꼬박꼬박 반복된다면.

그랬어도 슬아는 계속 작가일 수 있었을까? 허무함을 견디며 반복할 수 있었을까? 설거지를 끝낸 개수대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문서를 마주하고도 매번 새 이야기를 쓸 힘이 차올랐을까? 오직 서너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그럴수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이 대목에서 엄마가 떠오르고, 할머니가 떠올라서 혼났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밥을 차리며, 메뉴를 고민하며, 바깥음식 먹이기가 미안해 냉동족의 털을 손수 밀며 뻔뻔했던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다시 마음에 쌓였다.


회식에 가도 가지 않아도 나는 내일도 엄마이고 여자이다.

그것이 나의 정체성을 흔들거나 흠집을 낼 일은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내 마음에 달려있다. 나의 선택이다.


우습게도 간단하다. 아이가 아프고 말고는 나의 영역은 아니다. 아프다 낫다 다시 아프고, 아이들은 그렇게 큰다. 심각할라치면 한 없이 유리같이 조심스러운 문제이고, 가볍다 치면 깃털 뺨칠 무게다.


회식에 임하는 엄마의 자세란 없다.

그런데 마치 정해져 있는 듯 죄책감을 갖는 주체도 결국 나다. 나의 역할을, 상대의 역할을 소외시키지 말자. 우리 각자 자기 그릇만큼 이리저리 해내고 있으니까.


밥 한끼, 술 한잔 먹고 왔다고 개미가 베짱이로 종을 달리 하지는 않으니

부디 잘 다녀오자.



이미치 출처: 픽사베이

인용: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매거진의 이전글6살 아이에게 소주한잔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