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사적 고민에 머물고 말 일들을 공적 담론이 되도록 돕는다. 종종 그렇다.
'소년을 읽다'가 그랬다. 내게 그랬고, 그녀에게 그랬고, 그에게도 그랬으리라.
마음에 닿은 문장을 최대한 꾹꾹 느리게 옮겨적고, 느껴진 그대로 딱 한 문장씩만 색을 입히고 나니 글에 대한 글이 되었다.
작가도 그랬겠지. 이 책을 쓰기 전과 달리 바삭하게 스치던 인연들을 꼼꼼히도 환대하며 살고 있을 거다. 그녀의 글을 만나기 전, 그들은 촉법소년이라 불리는 것 말고 내겐 가감의 대상일 수 없었다.
재판을 경험하기에 이른 나이였겠다~무심하고 간단한 한 마디 건넬 마음이나 있었겠나.
감히 마음 한 켠 내어 줄 동정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해할 능력도 없거니와 되려 충조평판이나 지껄이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기꺼이 자세를 낮춰 나란히 들을 수나 있었을까.
택배알바에 대한 글을 읽고 나니 엘리베이터에서 나누는 인사에 온기가 더해진다. 하루아침 변화라면 그게 글의 힘이다. 일상에 쉬이 잊힌 대상, 그게 누구일지라도 상대에 대한 어떤 형태의 글도 마음마음 흔적을 남기고 만다. 그게 글쓰기와 책 읽기의 쓸모는 아닌지. 쓸모 많다.
누군가의 쓰기가 다른 이의 삶에 그렇다.
쓸 뭐 있는 삶을 이미 살고 있고 쓰면 되고 그러다 보면 쓸모 있는 삶을 살게 될걸 안다. 근데 요즘 마음의 부침이 심한지 잘 되질 않는다. 이 파도가 훑고 가면 쓸 뭐를 찾아 쓸모를 낳겠지?
이미지출처: 은유, 쓰기의말들 표지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