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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May 04. 2023

어버이날 감사편지가 곧 도착예정입니다.

글쓰기도 어린이에겐 give and  take

5월 첫 주 교사용 주간학습안내에는

매년 어버이날 기념 편지 쓰기가 빠지질 않는다.

어떤 수업을 할애해서라도 부모님께 전할 편지를 아이들 손에 쥐어 보내는 게 담임의 책무가 되어있다.


그렇게 5월이면 부모들은 반강제(?)지만 막상 없으면 아쉬울 자녀의 손 편지를 받게 된다.


아이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쓰라고 하면

보통은 이렇다.


첫인사

전하고 싶은 

끝인사

쓴 날짜

쓴 사람


나쁠 건 없다. 교육과정상.

{알맞은 낱말을 넣어 마음을 전하는 글쓰기}


실제 2학년 1학기 국어 5단원의 학습주제이자 내용요소이기도 하다.

대개는 첫인사 다음이 끝인사가 되거나 (행여 인사도 없이 끝나는 편지를 받더라도 놀라지  것) 전하고 싶은 말조차 뭐가 감사하고 뭐가 미안한지도 모르고 '냅다 사랑'하고 '냅다 고맙'다  말기도. 애들은 가르친 대로 다 배우진 않더라.


그래서 우리 반은 우선 실컷 울고 본다. 밑도 끝도 없는 흐름이긴 하다만.


글이란 게. 편지란 . 그냥 재우쳐 쓰라고 하면 단숨에 써지나. 우선 "어린이날부터 축하받아야" 어버이날을 축하하든지, 두 손 모아 감사하든지 할 거 아닌가.


애들은 역시 기브  테이크가 확실한 법.




5월 첫 주  우리 반 학부모님들께는 아이들 몰래 부모숙제가 부여된다.


귀찮을게 분명하고, 매년 욕먹을 각오로 들이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해는 유독 워킹맘이 많은 상황이라

1. 손편지+교사낭독

2. 손편지+부모음성녹음 메일전송


두 가지 중 선택하도록 설문을 미리 받았다. (다문화가정 어머니의 경우, 통화하며 찬찬히 듣고 아이가 듣기에 편하도록 내가 덧붙여 타이핑했다. 글씨체를 보면 서운할까 싶어 출력해서 준비해 두니 아이도 의심 없이 엄마의 작품이리라 여겼다)

음성 편지가 아니면 위축되지 않을지 염려 따윈 필요도 없다.


자, 이건 누구에게 온 편지일까? 하고 봉투를 여는 순간 궁금증으로  빛나던 눈망울이


OO야. 엄마야~



고작 이 한 줄  겨우 읽었는데 "이미 운다"

급기야 나도 운다. 아.. 놔.




2시간 내내 그렇게 미동도 없이 듣는다. 봉투를 열 때마다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스피커를 통해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해지니 이제는 다른 친구 엄마의 편지에도 덩달아 같이 운다.

한 명 한 명 편지를 전해 들은 아이는 앞으로 나와 직접 손 편지를 전해받고 자리로 들어갔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참 묘하고 진중한 것이...

 번이고 종이편지를 앞 뒤로 훑고, 봉투에도 넣었다가 다시 꺼내 또 읽다 재차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품에 안는다.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래. 거르지 않고 올해도 하길 잘했어. 너희. 이렇게 또 좋아할 줄 내가 알았어.'


사실 이 수업은

아이들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나도 사람인지라 지지리 말 안 듣고 하루종일 딴청에.. 쉼 없이  장난만 치는  아이를 보면 가끔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지는 날도 있다.^^

그런데 매년 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부모님들의 편지를 한 자 한 자 낭독하며 아이들과 눈을 맞추면 어김없이 깨닫는다.


그렇지. 이 아이도 이 집에서는 보물이다. 그래. 보물이고 말고!
 남의 집 귀한 새끼. 금쪽같은 내 새끼다. 잊지 말고 품어줄 것!


나를 위한 시간인 셈이다. 한 명 한 명 귀중함을 새겨주고 나면 아이들에게 글쓰기란 딱히 가르칠  없다. 편지지에 코를 박고 쓴다. 뭐라고 뭐라고 할 말이 저리도 많을까. 애쓰지 않고 절로 배운다.


엄마의 마음을 전해받은 아이들은 연이어진 어버이날 감사편지 쓰기 시간을  지루해할 줄 모른다. 받은 편지를 다시 펴보기도 하고 엄마의 예쁜 첫인사를 저도 따라 써보기도 하며 마냥 웃는다. (마치 내가 동경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하듯 아이들이 그렇다)


웃으며 기꺼이 글을 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오늘도 나는 아이들과 같이 울고 같이 기뻤다.


그리고 이 밤.

제 내가 내 아이들에게 편지를 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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