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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May 17. 2023

자세히 보지 않아도 예쁘다

수요일은 약 없이 보내주세요

선생님, 7반 아이 아직...


네. 바로 내려갈게요.



조회대에 있는 아린이(가명)를 겨우 어르고 달래며 수선스런 내 마음도 달래다 말고. 아침엔 가급적 신속하게.

'그래, 한 학기를 울던 지아도 있다! 아린이 정도면 괜찮다!'

 괜찮아도 먼저 자최면부터 가뿐히 걸어두고. 아이에게 곧 죽어도 오늘이 바로 그 '수요일'임을 반복해 상기시킨다. 나 혼자 생각일까?

그나마 다른 요일 보단 아린이 발걸음이 조금 가볍지 않나. 맞다.



-어떤 수의 값을 구하는 방법 

:듣는 둥 마는 둥 심드렁하게

-겪은 일을 차례대로 쓰기

:화장실에 간다며 남의 반 복도를 배회한다

-미래일기 쓰기

:연필을 쥐어주기 전엔 도무지 손을 사용할 줄 모르고

-물건을 설명한 경험 이야기하기

:자리에.. 급기야, 아이가 없다


친구들이 마냥 신났던 순간에도 이 아이의 자리만 허전하다.



어떤 수업에도 미동이 없는 건 아린이 혼자다.

홀로 견디며 겨우 앉아 있겠지. 외롭거나 괴롭거나.


'무기력'이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무서운 병이다. 학습격차에 짓눌렸다거나 부모기대에 짓눌린 경우라면, 5학년 즈음 시작되어도 늦지 않다. 어른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연유로 너무 이른 나이에 마음의 병을 얻고야 만 작은 손을 잡고 있자니 내 몸도 물들 듯 아프다.



시계바늘을 붙잡아 두고 싶은 순간이 바로 이 때다.



매주 수요일 11시.

예쁜 건 우리 반 아이들 모두고.

멋진 건 오로지 아린이 혼자 뿐 인 시간.

어쩌자고 아홉 꼬마 아이가 이렇게 섹시하고 유연하며 감각 있는 손 끝에다, 도무지 눈을 뗄 타이밍을 찾기 어렵다.

빼어나다. 마음에 드는 책에서 유려한 문장 딱 하나 조심스레 골라, 몇 번을 되 내어 보듯 아린이를 본다.

동작 하나하나 아우라가 돋도록 잘 해내는 아이를 보며 울컥한 날도 여러 번이다.


살아있네. 이 순간바로 저 아일 살리는구나. 문화예술강사 수업 40분을 위해 거꾸로 목, 금, 토, 일, 월, 화요일을 버티는 아이.

누군가에겐 부끄럽고 괴로울 이 시간에게서 넌 한 주를 버틸 힘을 얻고 있구나.

내게 낯 부끄럽기만 하던 ''이란 , 글감으로 발탁될 여지라곤 도무지 없던 단어였던 그것이.

누군가에겐 어떤 비타민제보다 강한 에너지를 전해내고, 탁월한 동기가 되는구나.




반짝반짝 빛나는 아린아!

선생님도 너만큼 이 시간이 참 좋아. 그 누구보다 네가 빛날 수 있는 이 40분이 내게도 선물 같아. 기꺼이 피어날 시간이. 네게도 어째서 필요하지 않겠니.

그 어떤 친구들보다 철저하게 네가 돋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감사하다니. 짜릿하달까.


선생님은 넋을 놓고 너를 바라보는 친구들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뻐. 늘상 너보다 탄탄히 돋보여온 친구들이, 이 시간만큼은 너에게 부러움의 눈빛을 흠뻑 보내주었으면 참 좋겠다.

오로지 너에게. 시선아! 머물러다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아린이의 표정을 느낄 수 있다. 아이의 혈액이 온몸 구석구석 돈다.

남들은 4교시라 좋다는 수요일이 난 '댄스'덕에 좋다. 1분 1초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의 열정을 전해받는 이 시간. 유독 가슴이 뛴다. 


춤추고 싶은 아이.

  추는 아이.


춤추는 아이 모습은 애써 "자세히 보지 않아도" 예쁘다.

'잘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니 더 바랄 게 없다. 확언하자면 그 덕에  아이의 마음의 병도 차차 나아진다.




춤이 그렇듯, 네 아픔이 찬찬히 아물 수 있도록 내가 꼭 도와줄게!


마음껏 춤추렴. 김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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