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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Jul 10. 2023

삼시 두 끼 한우구이

피 튀기는 내돈내산 식사

올여름 주제는 '한우'탐방.

남의 살이 내 살과 같더냐. 그럼에도 내 살로 만들어 오자! 는 각오가 다들 다부지다. 요 집 식구들이 그렇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포천, 안성, 횡성을 비롯한 강원도일대 정도로 후보지가 좁혀졌고 역시나 결정은 어머님 몫이다.


"스물여덟 번째" 가족여행.

엄밀히 말하면 최 씨는 오로지 나뿐이오. 시조카들을 제외한 60퍼센트 이상 윤씨네 혈족. 시댁여행이다.


결혼 13년 차. 이미 결혼 전부터 필수 참여가 보장(?)되었던 나는 만삭의 몸이었던 순간에도 예외란 없던 여행의 찐 멤버다.


매년 여름과 겨울이면 어디든 먹기 위해 떠난다.

이제 나도 그렇다. 먹는 것에서나마 즐거움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1박 2일 논술형 문항출제 출장일정으로 잠 못 이룬 며느라기라는 건..  '네 사정'이다. 필참 요청.

(솔직히 이틀출장이니 무리다~~ 하시면 못 이긴 척 한 번만 빠지고 연어맛집을 찾아가 볼까 상상은 해봤다. 살며~~ 시.)


금요일 1시 40분 : 5교시수업종료, 얘들아, 잘가를 외치며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교실을 나옴과 동시에 서울대학교로 출발.

당일밤 9시 종료(나의 불금 미션: 사브작독서모임 덕분에 실 종료시간은 12시였다고 해야겠지만 늘 느끼듯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에 빗댈만하다. 야식! 흐흐)


다시 다음날  아침부터 1시까지.

쉼 없이 진행된 일정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도 한우로 위로한다. 어차피 쉬지 못하고 가야 하는 거라면 배 터지게 먹자! 딱  기다렷.




그렇게 시흥에서 평창까지.

토요일 낮시간 정체를 이겨내며 4시간을 달렸다.

임경선의 <다정한 구원>을  귀로 흘려보내고,

로는 브레이크와 엑셀을 적절히 오가고,

머리로는 단백질 보충을 떠올린다.


5시 15분 도착

5시 30분 저녁식사 예약.


너무 노골적인 듯 야무지게 적절한 시각.

식사 15분 전 합류란 의도된 수순은 아닌데, 살짝 낯뜨거웠다.


준비~땅! 한 기분이랄까.



점심이 시원치 않아서 저녁이 안 먹히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출장까지 갔다 오느라
애썼는데 너 많이 먹어라.


아버님의 말씀을 100프로 공손히 따랐다.

대학생이 된 첫째 둘째 조카들이 집게를 들고 가위질을 하건 말건 말도 없이 최선을 다해 먹었다.


최선을 다하는 건 매번 나뿐만이 아니다.

요 집  식구가 다 ~~~ 그렇다.

나야뭐 식탐을 타고 캐릭터라치고, 가만 보면 되려 시댁식구들이 갈수록 나와 동화되고 있나 싶게 치열하다.

한우 모둠구이 아홉 판에

차돌박이 된장찌개, 물냉면까지 티끌 없이 먹어치우고 몸을 겨우 굽혀 신발을 신었다.


(이미 점심으로 횡성한우를 잡숫고들 오셨다는 걸 나중에 듣고 놀라기보단 눈을 살짝 흘기고 말았다만)



여기~~ 계산이요!

백사십 오만 원입니다~

뜨...  악

영수증을 받아 들고 문득 어린 시절 특별한 날이면

동부시장에 엄마와 나를 데려가 큰  맘먹고 연탄불에 굽는 돼지갈비를 3인분이나 시켜주시던 아빠생각이 났다.


그 시절, 그 돼지갈비 영수증엔 얼마가 찍혔길래 아빠가 큰 마음을 먹었어야 했을까~를 떠올리며

우리는 야식으로 치킨 4마리를 주문했다.


(다음엔 작작 먹자. 어머니께선 매년 같은 말씀을 하신다. 가운뎃 단어만 바꿔가며.

작작. 적당히. 다른 집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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