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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Jul 13. 2023

불금엔 편의점에 가서 쌍화탕을 삽시다.

천지차이라니까요!

요리에 근자감을 갖춘 이유를 모르겠다.

음식을 잘하는 친정엄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깨너머로 오래도록 배워본 역사도 전무하다.


그런데 뭐든 자신 있다. 내가 감히 만들지 못할 음식이 있다는 생각을 사실 해본적이 없다. 이런 자신감이 좀 황당하다는 생각도 이번이 처음이고.


첫째 아이가 족발을 잘 먹으면 나는 족발을 다.

족발을?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레시피를 찾아볼까?라는 생각보다 대강 먹어본 경험을 잠시 떠올려 느낌대로 장부터 보는 자세.


사장님~  족발 좀 하려고요.


동네 정육점 사장님은 내가 들어서면 젊은 처자가 별 걸 다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인다 ~ 싶으신지  살짝 기특+존경? 의 눈빛으로 반기신다. 내 해석이  그렇다. 나 좀 멋진가?


첫째 아이가 세 살 무렵 즈음 시작된 냉동족 구입과 면도는 2년 정도 계속됐다. 언제 어떻게 중단됐나 기억이 없다.


둘째 아이 입에서

아~~ 나 약식 먹고 싶다.

소리를 들은 날부터는 주말마다 남편을 2마트로 보냈다.

[깐 밤 두통, 가평산 잣, 건대추 600그람짜리, 건포도, 찹쌀, 계핏가루, 마스코바도]라고 쓴 카톡과 함께.

계핏가루나 마스코바도는 매번 구입하지 않더라도 저놈에 밤, 잣, 대추에 드는 비용이 세상에나~ 만만치 않다.


 밖에도 안심스테이크(얜.. 양반), 등갈비, 후무스샌드위치, 수박설기, 마카롱 등

겁 없이 당당하게 덤벼든 요리들이 하나같이 덤덤하게 버려졌다.

이쯤이면 포기할 만도 한데 난 별로 요리에 낙심하지 않는 스타일인 걸 아이 둘 키우며 알았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 앞에서 웬만하면 지난번 어디에서 먹어본 뭐가 생각난다거나 어떤  참 맛있었다거나.

뭐 그런 후기를 발설하지 않는다. 지아빠가 시킨 게 분명하다. 배부른 윤씨들 같으니라고!




출처: 내가주로 구입하던 국내산 디포리 스토어 홍보샷


어느 날 영접한 저 문구가 내  속 20대 연애세포도 아니고 30대 요리세포를 깨웠다.

엄머나~!  천지차이라니. 오끼! 접수완료.


주로 내 안구를 고정시키고야 마는 단어들이라면.

감칠맛, 청정해역, 최상급, 산지직송? 유기농. 수제.

 후로 오랫동안 통영산  햇디포리를 주구장창 주문해 쟁였다. 천지차이라잖아요~~~!!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파뿌리, 햇디포리, 무, 다시마, 건새우, 양파를 아낌없이 넣고 육수를 우리고 또 우렸다. 그러고는 육수로 뭘 할지를 몰라 냉동실 가득 얼렸다. 신기하게 뭘 해도 천지차이를 알지 못했고, 꽤 버티다 그 돈으로 퇴근길마다 '이성옥의 오늘반찬'엘 들렀다.




이제 요리에서 다시팩은 과유불급.

나의 정성과 자신감은 신기하게도 역효과로 치닫고 마니까.

기여하지 못할 재료는 사들이지 말며, 애쓰지 않고 무심한 듯 도도하게  샤샤삭!(상상이다ㅠ  빠르고 손맛도 좋은 어머니들이 요롷게 솜씨 좋게 한다고들 주워듣긴 했거든요;;)




알고 보니 내 요리는 주로 산만했다. 불필요한 장비빨, 재료빨이 맛을 보장하진 않고, 때로는 화려한 요소를 걷어내는 자세가 요리의 성패를 가른다는 거!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리. 는 아니다.

추측정도?ㅋㅋㅋ


요즘 나는 애쓰지 않고 수준별 제안을 해주는 센스 좋은 여자들에게 묻는다.


뭘 좀 하려고 하지 마.
넌 좀 사 먹어! 쫌!
너 힘들고, 가족들 괴롭다~!


냉동실에 고기 있냐?
고 앞 편의점 가서
쌍화탕이랑 소주 사 와서 전화해.




희한하게 여전히 자신감 터지는 나를 적절히 진정시키는 현자들이 꼭 주변에 있다.



매번 까먹는 비율도 즉문즉답해 주는 친구덕에 나도 덜 힘들고 윤씨들도 덜 괴롭다. 후자는 또 추측이다. 알 게 뭐야.

더 이상 파뿌리도 디포리도 없이 그저 다 때려 넣고 기다리기만 해도 버려지지 않는 수육을 제공한다.



요즘 다~~~ 들 시켜 먹지!
누가 이렇게~~ 집에서 고급요리를 말이야.
감사한 줄 알고들 잡숴!


호기롭게 내다리인듯 냉동족 털 밀다 이미 지친 그 시절도

천. 지. 차. 이. 디포리육수로도 길을 잃던 때에도

이렇게 당당하진 못했지  아마.


이젠 쌍화탕이랑 소주면 중간은 가지 싶다.




엄마들~~ 겁먹지들 말고 

불금에 한방수육 어때요? 자신감 있게! 


쌍화탕을 넣은 수육과 넣지 않은 수육은 천지차이라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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