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뭐든 자신 있다. 내가 감히 만들지 못할 음식이 있다는 생각을 사실 해본적이없다. 이런 자신감이 좀 황당하다는 생각도 이번이 처음이고.
첫째 아이가 족발을 잘 먹으면 나는 족발을 했다.
족발을?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레시피를 찾아볼까?라는 생각보다 대강 먹어본 경험을 잠시 떠올려 느낌대로 장부터보는 자세.
사장님~ 족발 좀 하려고요.
동네 정육점 사장님은 내가 들어서면 젊은처자가 별 걸 다 집에서 손수만들어 먹인다 ~ 싶으신지 살짝 기특+존경? 의 눈빛으로 반기신다. 내 해석이 그렇다. 나 좀 멋진가?
첫째아이가 세 살 무렵 즈음 시작된 냉동족 구입과 면도는 2년정도 계속됐다. 언제 어떻게 중단됐나 기억이 없다.
둘째아이 입에서
아~~ 나 약식 먹고 싶다.
소리를 들은 날부터는 주말마다 남편을 2마트로 보냈다.
[깐 밤 두통, 가평산 잣, 건대추 600그람짜리, 건포도, 찹쌀, 계핏가루, 마스코바도]라고 쓴 카톡과 함께.
계핏가루나 마스코바도는 매번 구입하지 않더라도 저놈에 밤, 잣, 대추에 드는 비용이세상에나~만만치않다.
이밖에도 안심스테이크(얜.. 양반), 등갈비, 후무스샌드위치, 수박설기, 마카롱 등
겁 없이 당당하게 덤벼든 요리들이 하나같이 덤덤하게 버려졌다.
이쯤이면 포기할 만도 한데 난 별로 요리에 낙심하지 않는 스타일인 걸 아이 둘 키우며 알았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앞에서 웬만하면 지난번 어디에서 먹어본 뭐가 생각난다거나 어떤게 참 맛있었다거나.
뭐 그런 후기를 발설하지 않는다. 지아빠가 시킨 게 분명하다. 배부른 윤씨들 같으니라고!
출처: 내가주로 구입하던 국내산 디포리 스토어 홍보샷
어느 날 영접한 저 문구가 내맘 속20대 연애세포도 아니고 30대 요리세포를 깨웠다.
엄머나~! 천지차이라니. 오끼! 접수완료.
주로 내 안구를 고정시키고야 마는 단어들이라면.
감칠맛, 청정해역, 최상급, 산지직송? 유기농. 수제.
그후로 오랫동안 통영산 햇디포리를 주구장창 주문해 쟁였다. 천지차이라잖아요~~~!!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파뿌리, 햇디포리, 무, 다시마, 건새우, 양파를 아낌없이 넣고 육수를 우리고 또 우렸다. 그러고는 육수로 뭘할지를 몰라 냉동실 가득 얼렸다. 신기하게 뭘 해도 천지차이를 알지 못했고, 꽤 버티다 그 돈으로 퇴근길마다 '이성옥의 오늘반찬'엘 들렀다.
이제 요리에서 다시팩은 과유불급.
나의 정성과 자신감은 신기하게도 역효과로 치닫고 마니까.
기여하지 못할 재료는 사들이지 말며, 애쓰지 않고 무심한 듯 도도하게 샤샤삭!(상상이다ㅠ 빠르고 손맛도 좋은 어머니들이 요롷게 솜씨 좋게 한다고들 주워듣긴 했거든요;;)
알고 보니 내 요리는 주로 산만했다. 불필요한 장비빨, 재료빨이 맛을 보장하진 않고, 때로는 화려한요소를 걷어내는 자세가 요리의 성패를 가른다는 거!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리. 는 아니다.
추측정도?ㅋㅋㅋ
요즘나는 애쓰지 않고 수준별 제안을 해주는 센스 좋은 여자들에게 묻는다.
뭘 좀 하려고 하지 마. 넌 좀 사 먹어! 쫌! 너 힘들고, 가족들 괴롭다~!
냉동실에 고기 있냐? 고 앞 편의점 가서 쌍화탕이랑 소주 사 와서 전화해.
희한하게 여전히 자신감 터지는 나를 적절히 진정시키는 현자들이 꼭주변에 있다.
매번 까먹는 비율도 즉문즉답해 주는 친구덕에 나도 덜 힘들고 윤씨들도 덜 괴롭다. 후자는 또 추측이다. 알 게 뭐야.
더 이상 파뿌리도 디포리도 없이 그저 다 때려 넣고 기다리기만 해도 버려지지않는 수육을 제공한다.
요즘 다~~~ 들 시켜 먹지! 누가 이렇게~~ 집에서 고급요리를 말이야. 감사한 줄 알고들 잡숴!